▶ 샌디에고 미션 ①
▶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57]
1769년 7월 초, 돈 가스파르 데 포르톨라 주지사가 이끄는 미션 탐험대가 샌디에고에 도착했다.
가톨릭 신부인 주니페로 세라(Junipero Serra) 신부와 일행과 군인들, 캘리포니아 이주 희망자 가족과 건축기술자들, 멕시코시티에서 개종한 인디언들로 구성된 탐험대는 바하 캘리포니아 로레토(Loreto)로부터 육로를 따라 북상하여 이곳에 왔다.
미션 탐험대 본진은 도착하자마자 군인 요새는 물론 예배당을 중심으로 한 샌디에고 마을을 조성하였으며, 세라 신부와 일행들은 주위의 인디언 부족을 스패니시로 산디에기또(Sandieguito: 작은 샌디에고 사람이란 뜻)라고 이름 붙였고, 이들을 상대로 종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종한 인디언들을 앞세워 그들의 언어와 풍습을 습득하며 선물공세를 통해 친분을 다져나갔다.
같은 해, 7월16일 마침내 지금의 미션밸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샌디에고 미션이 완성되었고, 세라 주임신부는 다른 신부들과 함께 ‘십자가의 축복’이라는 깃발을 흔들며 알타 캘리포니아와 샌디에고의 첫 미션 완성 축하행사를 가졌다.
미션 축하행사를 마치자 포르톨라 주지사는 일부 병력을 샌디에고에 남겨두고 몬트레이(Monterey; ‘왕의 산’이라는 뜻)를 향한 출발의 깃발을 높이 쳐들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프라이 후안 크레스피 신부가 엘카미노 레알(El Camino Real; 왕의 길) 탐험에 동행하였는데 크레스피 신부는 자신의 일지에 당시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는 세라 주임 신부로부터 겨자씨를 하사 받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그들 탐험대 일행과 함께 몬트레이를 향해 출발하였다.”(당시의 신부들은 미션 길을 따라가다 좋은 미션 지역을 발견하면 겨자씨를 뿌리는 전통이 있었다. 이는 나중에 밝고 노란 겨자꽃들이 만발한 곳은 미션 지역임을 표시한 증표가 되었다.)
캘리포니아 미션 팀이 떠나간 후의 샌디에고는 고난한 삶을 영위하며 미션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알타 캘리포니아의 정치 체제는 미션을 제1의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톨릭 신부 일행이 앞장서서 기독교 전파 정책을 펼쳐나갔고 치안을 담당할 목적으로 군인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들은 캘리포니아 지역에 산재해 있는 인디언 종족을 상대로 종교를 전파함은 물론이고 그 외에도 언어와 문명의 세계를 교육시켰고 농작물 재배법과 새로운 방식의 사냥법과 고기 잡는 법, 그리고 협동을 통한 단체생활 등 사회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