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송혜영 ㅣ 햄스터 무덤가에서

2012-01-1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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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촉촉해야 할 베이지역이 바짝 말라 있다. 밤동안에만 비가 조금씩이라도 와주면 좋으련만…아침에 물을 틀기 위해 앞뜰로 나가 어른 키만큼 자란 봉숭아나무와 장미가시덤불을 헤치고 수도꼭지를 찾는다.

아침햇살이 살포시 내리꽂히는 수도꼭지 주변으로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조그만 돌무덤들. 해미, 넛볼, 커들, 니블, 펌킨, 바나나…주먹만한 차돌맹이 위에 고사리손으로 이름과 숫자를 적어놓은 6개의 요상한 작품(?)들은 다름아닌 2007년부터 살다 간 햄스터들의 비석이다.

5년전, 아이들이 처음으로 펫(Pet)을 키우자고 해 고른 것이 금붕어와 허밋크랩(집게)이었다. 얼마 후 그것으로는 성이 안 찼는지, 직접 만지며 키울 펫으로 햄스터를 골랐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행복지수를 조사했는데, 펫이 없는 아이들의 지수가 제일 낮았다며 “자녀들이 행복하길 바란다면 햄스터를 사주세요” 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처음에 두 마리였던 햄스터들은 우리를 청소하느라 잠깐 함께 넣어둔 사이, 눈이 맞아 새끼를 낳았고 거실은 여덟 마리로 불어난 햄스터의 케이지와 장난감, 놀이기구들로 가득했다. 일년 후, 교회 근처에 살던 길고양이 새끼들을 데려오면서 아랫층 차고로 옮겨 갈 때까지, 정말 아이들과 알콩달콩 끈끈하게 지냈던 꼬마 천사들.


‘햄스터 더비’ 라는 햄스터볼 굴리기 대회에도 나가 상까지 타는 등 갖가지 기쁨과 위로를 주던 햄스터들은 결국 2년 반밖에 살지 못하고 차례로 뒷뜰에 묻히고 말았다. 염소와 닭들이 시도때도 없이 땅을 파헤치는 바람에 앞뜰로 이장을 할 때까지.

햄스터들이 죽을 때마다 한바탕 통곡을 하던 아이들은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아빠와 장례 치를 준비를 하곤 했다. 그냥 땅에 묻는 줄 알았더니 염을 하듯 하얀 종이로 돌돌 말아 단단히 싸서 끈으로 묶은 뒤 상자에 넣어 땅에 묻는, 제법 엄숙한 절차를 치렀다.

사진을 찍고, 염(?)을 하고 땅에 묻은 후 비석을 세우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던 내가 “ 이 다음에 엄마는 이렇게 묻지 말고 꼭 화장해라.” 했더니 저희들끼리 하는 말이 가관이다. “They don’t need to put makeup on, do they?” “아이쿠! 그 화장이 아닌데, 올해는 한자공부 부터 시켜야 겠다.”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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