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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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마음으로 한해를 보내자

2011-12-2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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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연중 칼럼

며칠 전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 내 책상 위에 흰 봉투를 놓고 갔다. 약간의 현금이 들어 있는 봉투였다. 회사 송년파티에 보태 써달라는 회사 소속 에이전트의 호의였다.

몇 년 전인가, 필자의 회사도 계속되는 불경기를 피해갈 수가 없어 꽤 많은 돈이 드는 호텔에서의 송년파티를 생략하고 솜씨 좋은 한식당에서 조촐하게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대신한 적이 있었다.

행사 후 몇몇 고참 에이전트들의 의견 제시가 있었다. 오래 계속된 부동산업계의 불경기가 회사의 존립을 위협할 만큼 어렵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으나, 초라한 송년파티가 모든 직원들의 활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본인들도 조금씩 작은 금액이라도 송년파티 비용을 보탤 용의가 있으니, 예전처럼 우아하고, 재미있고, 멋있는(?) 호텔에서의 송년파티를 매년 계속하자는 것이었다.

그저 지나가는 빈말로 흘려들었던, 에이전트나 회사가 똑같이 경제적으로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이런 최악의 불경기 상황에서, 그런 약속 아닌 약속이 이렇게 해마다 지켜질 것이라고 생각조차 안했었다. 그러나 몇 년째 실제로 그 약속이 지켜지고 있다.

정말로 감동이었고,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매년 그 감동을 먹고 송년파티를 치르고 있다. 작은 금액이든 큰 금액이든 몸담고 있는 회사 송년파티에 돈을 보태는 직원이 얼마나 있을까 싶고, 더욱이 봉급을 받는 일반 직원도 아닌 독립 계약직의 부동산 에이전트로부터 회사가 그런 도움을 받았다는 것에 감동하고 그런 동료들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다.

조금만 불만이 생겨도, 그리고 타 회사의 감언이설, 혹은 실적이 변변치 못하거나 했을 때 쉽게 회사를 바꾸고 떠나는 이직률이 높은 부동산 업계에서, 창사 이후 20년 넘게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 에이전트가 많은 것에 또 한 번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부동산 에이전트라는 직업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항상 잡다한 일에 시달리고, 골치 아픈 일과 어려운 일로 스트레스가 많으나 수입은 적은 편이고 소수의 실적이 좋은 에이전트 외에는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한가로이 물 위에 떠 있는 백조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이번 혹심한 부동산 경기의 침체 속에서 살아남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또 한 해를 보내며 생각하니 힘든 한 해였지만 불평보다는 감사할 일이 더 많았다고 느껴진다. 참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고, 나름대로 기쁜 세밑을 맞이하게 됐다.

무엇보다 엄청난 불경기를 잘 이겨내고 있는 회사나 소속 동료들에게 감사한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하느니만큼 좋은 인연과 만남이 중요하다.


필자가 그런 귀한 축복을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되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다. 동료들은 물론이고, 십년 이십년이 지나도록 연락 한 번 못한 필자를 섭섭하다 하지 않고, 세월 때문에 알아보기도 어렵게 변한 모습으로 찾아와 다시 일을 맡겨준 옛 고객들도 감사하다.

특별히 많은 분들이 부족한 필자의 이 칼럼을 읽고 격려를 해주기도 해서, 부끄럽지만 큰 힘이 되고 있다. 한해를 결산하며 좋은 결과를 얻은 에이전트들은 물론이고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일해 준 모든 동료 에이전트들이 정말 고맙다.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이 주위에 많아 서로를 위하는 마음 씀씀이를 통한, 기쁨을 맛보는 일이 지난 일년간 셀 수 없이 많았다는 것에 새삼 감사할 뿐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필요한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에는 재물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너무 많으면 교만해질 수도 있지만, 혹은 너무 없어서 사는데 불편하거나 움츠려들지 않을 만큼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이어진 불경기로 인한 손실과 상실감에, 즐겁지만은 아닌 연말을 맞게 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낙담하기보다는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한 해 동안 주위에서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은 물론이고, 혹시 힘들게 했던 일들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섭섭한 무언가가 남아 있다면 훌훌 털어버리는 대범함을 보여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한편으론 그 동안 혹시 해야 할 일들을 미루거나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도 생각해 보고 반성하는 시간도 가질 것이다. 그리고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때, 마치 오늘밖에 없는 것처럼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올해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는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는 성공적인 삶을 살다 갔다. 그런 그가 그렇게 치열하게 살 수 있던 이유를 그가 남긴 이야기 중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그에게 가장 중요했다고 한다.

죽음을 생각하면 무언가 잃을지 모른다는 어설픈 두려움은 곧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는 “하루하루가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게 될 것”과 “누구든지 어느 순간에 죽음이 찾아온다. 인생을 낭비하지 말기 바란다"는 얘기를 했다.

스티브 잡스의 ‘최선을 다하는 하루 인생’을 되새기며 한해를 보내는 글을 마친다. 매주 필자의 부족한 졸필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정연중
(213)272-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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