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공연장은 한 사회의 문화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그런데 우리 한인사회에는 아직 마음 편하게 연극이나 음악회를 공연할 제대로 된 극장이 없다. 한두 곳의 소극장이 있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점에서 충분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한인타운에 문화공간에 세워진다는 기사를 보면 반가워서 꼼꼼히 읽어보게 된다. 혹시 극장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실제로 대개의 커뮤니티 센터 건설계획을 보면 극장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꼼꼼히 살펴보면 그것은 극장이 아니라 그저 강당인 경우가 거의 모두라서 실망하곤 한다.
많은 경우 무대가 있고 객석이 있고, 마이크 시설이 있으면 극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강당이나 예배당이지 극장이 아니다. 극장이란 충분한 조명시설과 음향시설, 관객들의 안전을 위한 시설 등을 두루 갖추어야 하므로, 특별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제대로 갖추려면 돈이 무척 많이 들기 때문에 그냥 강당만 만들고 마는 것이다.
남가주 한인사회의 공연문화는 그런대로 긴 역사는 가지고 있다. 기점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리 짧게 잡아도 그럭저럭 40년은 넘는다.
그 동안 한인사회의 공연은 주로 윌셔 이벨 극장에서 열렸다. 그러다가 지금은 규모가 커지고 고급화되어, 음악회는 디즈니 콘서트홀이나 세리토스 퍼포밍 아트센터, 지퍼홀 같은 곳에서 열리고, 대중음악의 경우는 코닥극장, 노키아극장, 슈라인 오디토리엄은 물론 할리웃보울 같은 큰 곳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공연 횟수나 규모도 만만치 않다.
지난 40여년 동안 크고 작은 공연을 위해 공연장을 빌리는데 쓴 돈은 얼마나 될까? 계산해보면 상당한 액수가 될 것이다. 대충 계산해도 한인사회에 그럴듯한 극장 하나는 짓고도 남을 돈일 것이다.
물론, 돈이 좀 무리하게 많이 들더라도 주류사회의 이름난 공연장을 빌려 공연하는 까닭이 우리 한인타운에 마땅한 공간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명한 곳에서 공연하며 뻐기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공연의 질에 있어서도 이왕이면 멋진 곳에서 공연하고 싶은 것이 당연한 바람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타운에 아직도 제대로 된 극장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미주 한인사회의 인구 규모나 경제력, 정치력, 문화 수준으로 봐서도 그렇다. 극장 뿐 아니라, 박물관도 마찬가지다.
특히 경제적 자생능력이 취약한 연극이나 소규모의 음악공연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강당이 아닌, 규모가 작더라도 제대로 된 극장이 필요하다.
원로배우 커크 더글라스가 연극을 위해 또 큰돈을 기부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한인타운에도 멋진 극장 세워지고 아무개 극장이라는 간판이 붙으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물론 극장이라는 하드웨어 못지않게 그 공간을 채울 소프트웨어인 공연작품이 중요하다는 점은 잘 안다. “그런 것은 걱정 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쓸쓸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은 단순히 돈벌이의 장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화적 상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장 소 현 <극작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