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있을 때 잘해

2011-12-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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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연히 셜리라는 중국계 미국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수십 년을 뉴욕주에서 살다가 남편이 세상을 뜨자 서부로 은퇴를 했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재미 중 하나가 각계각층의 사람과 여러 다른 인종들을 만난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내게 남편이 있느냐고 물으면서 그렇다고 대답하니까 당신은 남편에게 하루 한 번씩 사랑한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솔직히 그렇지 못하다고 했더니 지금부터라도 꼭 그 말을 하고 살라는 충고를 해 주었다. 자신은 남편이 죽자 제일 가슴 아프고 후회되는 일이 바로 그 말들을 하면서 살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학벌도 높고 똑똑했지만 좀 까다로운 성격이라서 무엇이든지 참견을 하고 지적하는 스타일이어서 솔직히 살아 있을 때는 피곤하기만 했는데 정작 남편이 떠나자 그에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후회되고 한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는 얘기였다.

몇 년 전 방영된 한국 연속극 중 ‘있을 때 잘해’라는 제목의 연속극이 인기리에 방송된 적이 있다. 그때 마침 한국을 방문 중이던 나는 그 제목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늘 같이 옆에 살고 있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우리들은 잘하기보다는 어느 땐 무심하고 어느 땐 서로 상처를 입히면서 살고 있다. 옆에 있기 때문에 항상 같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영원히 그렇게 살줄 알고, 감사하거나 고맙다는 생각보다 좀 만만하게 생각해서 함부로 대하고 살갑게 굴지 못하고 사는 때가 많이 있다.


그것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습관성 같은 무심함 때문이리라. 그 날 그녀의 충고를 받고 나는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한국인들의 정서는 미국인과 달라서 많은 것을 표현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아끼고 사는 것이 덕목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요즘 남편의 심장이 규clr적으로 뛰지 않는다고 의사에게 경고를 받고 여러 가지 테스트를 받고 있는 중이다. 나는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이어서 친구들과 만나도 이야기를 주도하는 편인데 정작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거나 고맙다던가 미안하다던가 하는 말은 인색한 편이다. 남편은 요즘 의사에게 야단을 맞고 나서야 자신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아침마다 산책도 하고 음식도 조절하는 등 자신의 건강에 관해 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남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사는 사람이다. 자신의 핏줄도 아닌 우리 두 아들을 자신의 자식과 똑같이 대하고 키워주고 대학까지 보내준 사람이다. 처음 아이들이 미국에 왔을 때 한마디 영어도 못해서 우리 집은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 같았다. 그 힘들었던 세월을 다 함께 잘 넘기고 이제는 모두 잘 살고 있어서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나는 남편에게 큰 빚을 졌고 마음속으로는 늘 고마워하지만 정작 그것을 잘 표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젠 나도 좀 변해야겠다. 더 늦기 전 당신이 멋져! 당신이 최고야! 땡큐! 아이 러브 유! 당 신이 살아 있어 고마워! 이런 말들을 하며 살아야겠다. 약간 닭살처럼 몸이 근질근질하기는 하지만 이런 말들이 그를 행복하게 한다면 나는 살아 있을 때 그 말들을 하며 살 것이다.


김옥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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