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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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힐 듯한 북녘…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2011-11-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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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찬열의 최전방지역 도보행진 <11> 철원

“손에 잡힐 듯한 북녘…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땅. 국군 경비초소 뒤로 광대한 땅은 반세기 동안 누구의 손길도 미치지 않은 자연의 보고다. / 철원은 분단과 긴장의 상징이면서도, 이를 통해 만들어진 훌륭한 자연환경을 만끽하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중부 내륙의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한탄강에서 래프팅을 즐기는 모습.

문혜 4거리다. 오늘 목적지 동송이 12킬로미터가 남았다. 총소리가 들린다. 훈련 중인 모양이다. 철교가 나온다. 이승만과 김일성의 이름을 따라 명칭을 지었다는 승일교다. 게시판에 자세한 내력이 나와 있다.
“철원군 갈말읍 대내리와 동송읍 장흥리 경계에 위치한 이 다리는 북한 정권하인 48년 8월부터 장흥리 쪽에서 시작하여 다리의 절반 정도를 추진한 상태에서 6.25사변으로 중단되었다. 수복 이후 우리 정부에서 공사를 마무리하고 58년 12월 준공했다. 그 후 남북합작의 아이러니한 공사과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당시 남한 이승만 대통령의 ‘승’자와 북한 김일성의 ‘일’자를 따서 ‘승일교’라는 다리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평화전망대서 바라보니 DMZ의 물줄기도 숲도 한눈에
민통선 안 벌겋게 녹슨 철로 옆엔“철마는 달리고 싶다”


한탄강이 흐른다. 이 강은 래프팅으로 유명하다. 경치가 빼어난 계곡에서 사람들이 래프팅을 즐기고 있었다. 고석정에 도착했다. ‘철의 삼각 전적관’이 보인다. 6.25 당시 철의 삼각지 전투에서 산화한 장병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광장에 탱크를 비롯한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전투와 관련된 유물과 기록물들이 잘 분류돼 있다.


일정을 마치고 여관에 들어와 인터넷을 여니 이메일이 와 있다. 미국에 계신 Y선배로부터 온 편지다. “정형, 많이 걸었네, 철원까지 오다니. 철원은 내게 슬픈 기억이 있는 곳이요. 전쟁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철원군 대광리에 가묘로 묻고 오셨는데, 전쟁이 끝난 뒤 그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그 장소를 찾지 못하고 말았어요.”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가슴이 메여 왔다.

다음날 노동당사를 구경했다. 1945년 해방 후 북한이 건립하여 6.25 직전까지 사용했던 북한 노동당 당사다. 시멘트와 벽돌로 지은 3층 건물인데 6.25 전란에도 파괴되지 않고 남아, 문화유산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곳곳에 총탄으로 패인 흔적이 보인다. 농민회장을 맡고 있는 김용빈씨의 안내를 받아 민통선 안으로 들어갔다. 출입증을 내보이니 검문소의 헌병이 길을 터준다.

민통선. 민간인 출입 통제선을 말한다. 김 회장은 민통선 안에 논을 가지고 있다. 오늘도 모심기 작업을 하다 나왔다고 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천연의 나무숲이 나타나고 오른쪽 숲에 놀라운 광경이 눈이 띈다. 학 마을이다. 오염되지 않은 천혜의 숲속에 학들이 둥지를 틀어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김 회장이 멀리 보이는 산자락을 가리킨다.

DMZ 안에 위치한 그곳이 궁예가 창건했던 옛 태봉국 궁터라 했다. 경원선 철도가 그 곳을 지나갔다고 했다. 옛 왕궁 터를 기차가 짓밟고 지나가도록 일제가 일부러 설계를 한 탓이라 했다. 조선의 맥을 끊기 위해 영이 서린 산봉우리마다 쇠말뚝을 박았던 일제의 집요함, 그들의 근성을 이곳에서 다시 확인하게 된다.

월정리 역이라고 한문으로 쓴 역사의 이름이 옛 그대로 붙어 있다. ‘월정리 철원-가곡’ 이정표가 벌겋게 녹슨 채 서 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어 아래 각 지방까지의 거리가 적혀 있다. 서울 104km, 부산 543km, 목포 525km, 원산 123km, 함흥 247km, 청진 653km, 나진 731km…

쭉 뻗은 철로가 끊긴 그대로 누워 있다. 달리고 싶은 철마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반세기 넘게 기다리고 있다. 침목 사이에 잡풀만 무성하다.

평화전망대에 올랐다.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는데, 이용료는 왕복 5,000원이다. 모노레일을 설치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아주 깨끗하다. 전망대에 오르니 DMZ 광경이 한 눈에 보인다. 아까 설명을 들었던 태봉국도 가깝게 보인다. 철원이 태봉국의 수도였다. DMZ 안의 물줄기도 숲도 한 눈에 바라보인다.


남쪽으로 눈을 돌려 ‘아이스크림 고지’를 설명해 준다. 민통선 안에 자리한 저 작은 산이 평야지대에 우뚝 솟은 산이라 작전상 중요한 곳이었다고 한다. 해서 6.25때 피아간에 저 산을 차지하려고 수많은 피를 흘렸다고 한다. 양 측으로부터 하도 많은 폭격을 받아 아이스크림처럼 흐물흐물 흘러내려버린 모습이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보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이름이다.

나오는 길에 ‘백마고지 전적지’를 잠깐 돌아보았다. ‘백마고지 전투 전적비’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쓰여 있다. “철원군 북방에 있는 백마고지는 6.25동란 당시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다. 1952년 10월6일, 중공군의 대공세에 의해 10일간이나 계속된 백마고지 전투는 약 30만발의 포탄이 이 지역에서 사용되었으며, 고지의 주인도 24번이나 바뀌었다.

격렬했던 전투 끝에 남은 흙먼지와 시체가 뒤섞여 악취가 산을 뒤엎을 정도였고, 서로의 폭격에 의해 고지의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는데 마치 백마가 옆으로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그 이름을 백마고지라 부르게 되었다”이곳을 나와 농민 주유소란 곳을 방문했다. 철원군 농민회에서 직영하는 업소다.

주유소는 2000년 9월에 시작했다. 조합원은 130여명인데 주유소는 5만원 이상, 500만원 이하로 출자액을 제한했다. 일반도 출자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영업 이익이나 출자 이익은 당연히 배당하고, 조합원들이 농업에 필요한 기구나 주요 영농품목을 공동 구매한다고 했다. 기타 이 지역 농민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조합원들이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고 또 실천에 옮긴다고 했다.

2009년 2월부터 식당을 직영한다고 했다. 농민회원들이 참여하여 직거래 형태로 운영한다고 했다.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농가로부터 직접 공급하여 소비자에게 시중 식당보다 싼 가격으로 제공한다는 개념이다. 점차 이름이 알려지면 프랜차이즈로 확대 운영하겠다는 복안도 가지고 있다.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생산자로부터 소비자로 바로 이어지는 운영개념이니 농가도 소비자도 함께 이익을 보는 특이한 식당 형태다.

경험 없는 일이라 약간의 차질이 있긴 했지만, 차근차근 자리가 잡혀가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김 회장과 함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송읍에 자리한 제법 큰 규모다. 들어가 보니 한 쪽에서는 고기를 판매하고 있고, 한 쪽에서는 고기를 구어 먹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질 좋은 고기를 싼 값에 먹을 수 있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고기 맛이 일품이었다.

식당 직영운영은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쳤다지만 획기적인 발상임이 분명하다. 농촌의 현실은 내가 농사를 짓던 때와 마찬가지로 다른 분야에 비하면 지금도 어렵다. 영농법도 많이 달라졌고 기계화가 되어 농사짓는 방법도 많이 개선되었지만 상대적으로 힘들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세상은 늘 이렇게 반 발짝 앞서가는 사람들에 의해 개선되고 발전해 나간다.

철원군 원로회와 시민연합에서 내건 배너가 눈길을 끌었다. “한·러 철도연결 공동성명서 발표/경원선 철원역사 복원과 월정역(평화광장)까지 연장을 대통령께 청원합니다”라는 내용이다.

통일 한국의 중심도시, 철원이라는 구호에 걸맞은 내용이다. 한국과 러시아가 합작하여 북녘 땅을 거쳐 가는 철도가 놓이고, 그 철도가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으로 통하는 날이 언제쯤일까. 철도수송이 가능하면 물류비용이 5%정도 떨어지고 그만큼 우리 상품이 경쟁력을 갖게 된다. 통일까지 좀 멀더라도 그 정도의 단계만 가더라도 북한은 철도를 허용하는 대가를 얻게 될 것이니 남북이 서로 윈윈 하는 상태가 된다. 통일의 단추는 그렇게 차근차근 풀어 가면 되는 것이다.

승일교가 북쪽과 남쪽이 합해서 완성되었듯이, 남과 북이 힘을 합하면 다리가 이어지고 물자가 왕래하고 사람이 소통하면서 통일의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그것을 이루어낸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통일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열매는 그 과정에서 지불해야 할 어떤 대가보다 크고 값질 것”이다. 필자의 말이 아니다. 현 한국의 최고 통치자가 최근에 한 말이다. 옳은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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