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꽤 깊었는데도 아직 날씨가 따스하다. 청명한 아침, 커피 잔을 손에 들고 양지바른 창가에 앉는다. 따끈한 한 모금 커피향이 나를 먼 곳으로 안내한다.
올해 내 나이 70. 이제야 차분히 나를 뒤 돌아본다. 외모는 이렇게 변했는데 마음은 그대로다. 몸이 말을 안 들어 자신이 없을 뿐 무엇이든지 다 하고 싶다. 많은 아쉬움이 스쳐 지나간다. 되돌릴 수 없는 삶을 참으로 어리석게 살아 왔다.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할 여지도 없이 그냥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았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잠시 생각뿐 현실에 휘말려 정신없이 살았다. 마치 내가 원하는 삶은 나중에 다시 살아도 될 것처럼 미루면서.
이북에서 이남으로 이주하신 부모님, 일본 통치하에 서울에서 태어나 해방을 맞고 6.25 사변을 당해 전쟁도 겪었고 대구에서 피난민 생활도 했다. 우리가 한창 어려울 때 미국 이민을 가 낯선 땅에서 개척 생활도 했다.
번잡한 뉴욕 거리를 서둘러 걷다가도 뒤를 돌아보면 나 혼자 덩그러니 서 있다. “여기가 어디인데 왜 내가 여기에 있지?" 아무도 안 보이고 조용했다. 차차 내 살던 서울의 모습, 그리운 얼굴들이 보이면서 다시 걸었다. 그래 언젠가는 갈 거야! 내나라 내 고향에서 내 가족과 같이 어울려 사는 것이 기본 행복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혼, 공부, 가난 때문에 떠나는 연습을 많이 해왔다. 유학을 갔으면서 주위의 만류로 학교는 문턱에도 못 가봤다. 체류기간이 다 되어 쫓겨날까봐 싫다고 버티던 남자와 결혼을 했고 그 삶에 파묻혀 나는 없었다. 그 어려웠던 삶이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했기에 억척스레 살았다.
지금 생각하니 지난날이 내가 헤쳐 나올 수 없는 운명이었고 마땅히 내가 감수해야 할 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 내가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저렇게 했어야 했는데 그런 후회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 이랬어도 저랬어도 후회는 마찬가지 일 테니까. 진짜 후회는 내 어리석은 생각에 가려 그 속에 있던 내 행복을 모두 느끼지 못한 것과 내 무능력 때문에 나는 물론 주위가 더 힘들었다는 것이다.
괴로움을 느끼고 힘들어도 영원하지 않고, 그것도 행복과 겹쳐 있는 비빔밥이었음이 이제야 보인다. 어차피 선악이 공존하는 세상 희로애락이 뒤섞여 우리를 보상해 주기도 하고 위로해 주기도 하는데 말이다. 기쁨과 보람도 있었으면서.
늦게나마 아름다운 제주도, 남편 고향땅에 남편과 같이 자리 잡고 한가로이 생각에 잠길 수 있어 행복하다. 지금은 지난날이 모두가 아름다워서 매일 매일 다시 만나 웃음 짓고 있다. 이제 더 바랄 것이 없으니 머리를 굴리며 힘들이지 않고 가슴으로 따뜻하게 살고 싶다. 느긋이 주위를 바라보면서 아직도 배우고 있다. 흰 머리에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나 이제부터 나의 남은 삶은 만사에 감사함뿐이다.
더구나 이제 내 영혼을 살찌게 해주는 제주 문화원이 있어 기쁘다. 유머가 넘치고 매력 있는 이춘기 교수님과 목소리 높여 노래도 하고, 윤석산 교수님의 무게 있는 창작 강의가 있어 나의 삶은 나날이 풍요로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