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리운 어머니

2011-10-05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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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일 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 온 지 20년 동안 어머니께서 세 번 방문하셨는데 그 중 첫 번째 방문이 17년쯤 전이다.
외동딸인 나를 머나먼 타국에 보내놓고 밤마다 달보고 우신 우리 어머니. 성질 급한 사위, 그리고 시집 식구들 사이에서 매일 눈물로 보내는 건 아닌지 걱정을 하셨던 어머니였다. 그래서 첫 번째 미국을 방문하셨을 때 이제 딸이 큰소리 치고 산다는 걸 보여 드리려고 남편하고 짜고 엄마 앞에서 일부러 남편에게 큰소리 치고 평소에 안하던 잔소리도 하면서 엄마를 안심시켜 드렸었다.
아버지 말씀이 한 번 다녀가신 후로 달보고 우시는 일이 없었다고 하셨다.
우리 친정에서는 시집을 오면 2년은 같이 살고 살림을 내주셨다. 오빠 네 분, 그리고 남동생 하나, 모두 그렇게 했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서 4대가 함께 살았지만 내 기억으로 큰 소리 한번 난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께서 시조를 읊어주시고 삼강오륜을 너무 많이 들어서 지금도 외우고 있다.
일 주일에 한 번씩은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는데 그때마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우리 딸이구나 하며 좋아하시던 그 목소리, 힘들고 외로울 때 힘이 되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이제 다시는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고 가슴 저리게 느껴진다.
어제 제사 비용을 부치고 올케 언니에게 전화를 했더니 시어머니가 너무 보고싶다고 울고 있었다. 비록 교육은 많이 못 받으셨지만 다섯 며느리로부터 존경한다는 말을 들으셨으니 우리 어머니 훌륭한 일생을 사신 셈이다.
돌아가시기 일곱 달 전에 미국엘 다녀가셨는데 여기 계시는 2주 동안 식사를 거의 못하셨다. 마지막으로 딸 얼굴 한 번 보시려고 죽을 힘을 다해 오셨다는 것을 어머니 돌아가신 다음에야 알았다. 미국 온 지 20년을 뒤돌아보니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쉬지 않고 그냥 일만 하고 살았던 것 같다.
살아생전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열심이 살았고 사랑하는 두 아들도 착하게 잘 자라서 좋은 짝을 만나 걱정하지 않을 만큼 잘 살고 있고 우리 부부도 어느 정도 노후준비가 된 것 같다.
남편 말대로 지금도 우리는 주 7일 일을 하니까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은퇴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때 나 몰래 예쁘게 손수 한복을 만들어 주시고 내가 백설기를 좋아한다고 2주에 한 번씩 만들어 주셨던 그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어머니!

제니 박/ 엘크리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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