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한 문제는 사랑의 무기로

2011-08-17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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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평일 버지니아

며칠 전 KBS 뉴스 시간에 반영되는 한 일본 기자가 찍은 북한군인들의 모습을 아내와 함께 볼 기회가 있었다.
“차마, 저렇게까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 눈에 비친 북한의 모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만이 기근으로 인해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 소말리아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한 잔악한 독재정권이 만들어 낸 비극이고, 천인공노할 인재임에 분명하다.
그날 밤, 아내가 한밤중에 잠을 자다 말고 일어나서 “북한 사람들을 위해서 쓰세요” 하면서 내 새끼손가락에 가는 반지 하나를 끼워주웠다. 내가 결혼 기념일에 아내에게 선물했던, 그녀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루비 실반지이다.
나는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다시 생각해 보자” 하며 반지를 그녀의 손가락에 다시 끼워주고 억지로 잠을 청해야 했다.
오래 전 이야기이다. 나는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 국제기구에 몇 백 불 기부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북한 인접 지역 중국 땅에서 북한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선교 단체에 적은 액수나마 몇 차례 선교기금을 전달했던 적도 있다.
또 이 지역 대학동창회 일을 맡고 있을 때 북한에서 일어났던 대형 기차 폭발 사고 소식을 듣고 교포 모금 단체를 통해서 몇 백 불을 기부하기도 했다.
그 것 뿐이었다. 그 외에는 북한 사람들을 도왔던 다른 기억은 없다.
그러면서도 북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김정일 죽일 놈” 하고 욕을 하며 분노를 삭여 왔다.
나는 솔직히 아내의 의견을 쫓아 반지를 팔아서 북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민족에 대한 사랑도, 용기도 없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한 북한 탈북자 기독교인이 쓴 이 글을 읽고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아주 파렴치한 립 서비스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차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무슨 말이라도 한마디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고, 사상적으로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나는 신앙적으로 기독교인에 속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천년 전 이스라엘 땅에서 예수가 삶으로 보여 주었던 가치를 신뢰하고,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는 한 평범한 신앙인이다.
예수는 모든 문제를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접근했다. 그는 한 번도 무력적인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 그가 누리고 있었던 카리스마나, 군중들의 전폭적인 호응으로 비추어 볼 때 그는, 당장이라도 포악한 정권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쉽고 넓은 길 대신 “좁고 어려운 길”을 택했다. 그는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서 처형됐다.
그리고 수백 년 후에 로마 제국도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예수의 사랑은 죽지 않았고 지금도 살아서 우리들 가슴 속에 숨 쉬고 있다.
나는 북한정권의 폭정을 규탄하며 인권법안을 제정하고 있는 수많은 우방국들의 한반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누구보다 존경하고 감사해 하고 있다.
그리고 원자탄을 사용해서라도 북한 정권을 시급히 타도해야 한다는 분노의 목소리도 충분히 이해하고 하루라도 빨리 저 무자비한 북한 김정일 정권이 무너져야지 하며 순간적인 공감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 문제가 그런 요란스런 말잔치나 폭력의 힘으로는 쉽게 해결될 것 같지가 않다. 또 그런 폭력적인 방법에 의존할 경우, 무고한 생명들의 희생이 너무 많이 뒤따를 것 같다.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궁리를 해 보아도 내 머리로는 예수가 사용했던 사랑의 무기를 사용하는 거 밖에는 더 좋은 묘책이 없을 것 같다. 혹자는 내 주장이 비현실적인 이상론이요, 낭만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난을 할지도 모른다.
부인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믿고 따르는 예수도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요, 낭만주의자이다.
그럴 수는 없다. 인류의 지난 역사는 예수가 사용했던 그 사랑의 무기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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