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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영화 ‘킹스 스피치’를 관람하고…

2011-08-1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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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은주 예술인의 끈(KAACC-USA) 회장 및 교사(PS/IS 57)

팔자 좋은(?) 교사라서 그런지 방학 때면 혼자서 커다란 영화관에 가서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곧잘 관람하곤 한다. 뉴욕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젊은 시절에도 새벽 2시라도 개의치 않고 나가서 ‘시네마 빌리지’ 등에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자주 관람했었다. 사춘기 소녀처럼 영화를 보고 와서는 일기도 쓰고 음악도 크게 틀어놓고 혼자서 관람한 내용을 생각하면 궁상을 떨기도 했다. 중년으로 접어드는 지금은 일상생활에 바쁘다보니 평소에는 영화도 자주 못보고 박물관, 화랑, 전시회 등도 크게 마음먹기 전에는 좀처럼 실행에 옮기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인지 교사로서 시간이 많이 생기는 방학 때가 되면 짬짬이 영화관을 찾는 것이 습관처럼 되고 있다.

지난겨울 짧은 겨울방학에는 현재 영국여왕인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인 킹 조지 6세와 언어 치료사 라이오넬을 그린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를 관람했었다. 영화를 관람하면서 "아! 이래서 아직 이 세상이 ‘스승’을 필요로 하는구나. 로봇이 아닌 인간의 관계, 특히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혼자 중얼거리며 집에 왔던 기억이 있다.
Bertie(킹 조지 6세)는 쉽게 말해 말을 더듬은 병이 있었다. 누구나 약한 부분은 있기 마련. 이 왕은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 귀족의 신분까지 모든 것을 갖췄지만 말을 더듬는 병에 시달렸고 영화는 아내(엘리자베스 여왕의 엄마)를 통해 배우로 실패한 라이오넬 선생을 소개 받으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필자가 존경하는 어느 시인은 이 영화를 헬렌 켈러와 그녀의 선생인 애니 설리반과의 관계와 비교하기도 했다.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어떻게 로봇이나 컴퓨터, TV 등 비인간적인 도구가 감히 우리의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할까? 감히 어떻게 이 비인간적인 도구로 우리 아이들에게 인간을 대신하는 스승이라며 학교로, 집안으로 떠밀게 된 것일까? 감히 어떻게 비인간적인 기계와 통계, 숫자로 광고 상품을 스승이라며 학교에 떠민 것일까?"를 생각하게 됐다.

나는 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인간만이 간직할 수 있고 인간만이 상대할 수 있는 섬세하고 묘한 인간관계를 다시금 깨닫게 됐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제자와 스승 사이에 꼭 필요한 관계이고 이렇게 해서 진실된 교육이 이뤄진다고 생각하게 됐다. 영화에서 주축을 이루는 두 인물 가운데 왕자의 스승이자 무대에서 버림받은 배우인 라이오넬은 왕의 아들을 우선 자신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으로 생각할 뿐 왕자라는 특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는 훗날 왕자가 왕위에 올랐을 때에도 스승이자 치료사라는 위치적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영화 후기에는 두 사람이 평생 동안 친구로 남아 있다는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교사와 학생은 한편으로는 치료사와 환자의 관계와도 같다. 눈을 맞추고 마음을 읽고 서로를 배려하며 서로의 약점을 막아주고 보호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가 교사와 학생 사이다. 그리고 치료사와 환자의 관계로 영화에 나온 것처럼 서로에 대한 믿음, 서로에 대한 진실, 서로에 대한 희망을 안고 관계를 발전해 나가는 사이인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기계를 너무 의존하고 의식하며 산다. 인간들끼리만 이뤄지는 관계를 무시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면서 너무 삭막한 세상으로 변해 버린 것만 같아서 때론 안타깝고 슬프기까지 하다.

순수하면 바보로 보고, 똑똑하면 계산을 잘하는 사람으로, 또한 겉과 속이 달라야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영화 속에서 그려진 두 인물은 서로에게 지극히 솔직했고 지극히 서로에게 약점을 감추려 하지 않았으며 특별하고 소중한 관계로 평생 동안 친구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 이처럼 특별한 친구사이, 스승과 제자사이, 선배와 후배사이, 부부사이가 형성돼 있다면 얼마나 좋고 행복할까? 문득 나에게 특별히 소중하고 또한 상대가 나를 소중히 생각해주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있을까 살펴보게 된다. 만일 아무도 없다면 자신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친구이자 스승이 될 대상을 찾아보는 것도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사람을 찾기 전에 먼저 내 자신 스스로가 타인에게 그처럼 진실된 사람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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