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희 교사(뉴커머스고교)
지난해 플러싱에서 열린 자폐아를 둔 부모를 위한 서포트 그룹에 참석한 적이 있다. 어린 자폐아를 가르치는 한국인 선생이 만든 그룹이어서 참석한 부모들도 모두 한인들이었고 그들의 자녀들도 내 아들 에반이와 비슷한 연령대였다.
자폐아를 키운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통해서일까? 한 자리에 모인 부모들은 곧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중 한 엄마는 시어머니와 남편이 아이의 자폐가 자기 때문에 비롯됐다고 원망한다며 눈물을 보였고 나의 눈가도 붉어졌다.
아이의 자폐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부모들은 마음이 찢겨져 나가는데 그러한 비난의 눈총을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들로부터 받았으니 오죽 마음이 아팠을까 싶다. 눈물로 젖은 내 눈가를 닦아내면서 왜 많은 한인 부모들이 아이가 자폐가 있다는 사실을 굳이 드러내 말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자폐증은 ‘신경발달의 장애’다. 신경발달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함으로써 신체적, 사회적, 언어적 상호작용에서 이해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되면서 정상적인 사회 형성이 어려운 발달장애인 것이다.
하지만 그 원인은 아무도 모른다. 1943년 정신과 의사인 Leo Kanner가 처음으로 자폐라는 장애를 연구 대상으로 올린 이후로 학계에서는 자폐의 원인에 대한 무수한 의견이 제시돼 왔으나 상당히 납득될 듯한 이론에 불과할 뿐 어느 것 하나 입증된 바 없다.
Leo Kanner는 처음으로 자폐의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을 학계의 관심으로 끌어냈으나 그는 이러한 자폐아는 아이를 철저하게 혼자 있도록 방치하고 전혀 사랑을 쏟지 않는 부모로 인해 발생했으며 이러한 아이들을 냉장고에 넣어서 얼어붙어버린 것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이후 아동발달전문가인 Bruno Bettelheim가 지지하고 나서면서 소위 ‘냉장고 엄마’ 신드롬으로 굳어져버렸다.
자폐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상당히 높아져 지금은 ‘냉장고 엄마’ 신드롬은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는 현재의 미국이지만 과거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는 부모의 무관심과 잘못된 교육법으로 아이가 자폐아가 되었다는 사회적 비난을 벗어날 수 없었던 힘든 시기가 분명히 있었다. 이러한 잘못된 사회적 인식을 깨는데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유명한 심리학자이며 자신 또한 자폐아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Bernald Rimland이다. Rimland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광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냉장고 엄마’ 신드롬이 전혀 사실무근임을 알림으로써 학계에 자폐의 원인을 새롭게 모색하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그의 연구는 사회적으로도 자폐아의 부모가 죄지은 사람처럼 눈물로 살아야했던 마음의 짐을 크게 덜어주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후 자폐의 원인에 대한 연구는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으나 여전히 그 원인은 알 길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저명한 학계에서도 밝히지 못한 자폐의 원인을 너무나 간단하게 밝혀주는 사람들을 필자는 주변에서 많이 본다. 어린 나이에 에반이에게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여주어서 에반이가 그렇게 된 것이라는 둥, 에반이를 임신했을 때 크게 넘어졌거나 엑스레이를 찍은 적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가까운 친인척 중에 자폐를 가진 사람이 없다면 그건 반드시 후천적인 요인일 수밖에 없다는 주변의 얘기는 필자가 자폐아가 있어 다른 아이들처럼 아이가 잘하는 것이 딱히 없어 자랑거리도 별로 없긴 했지만 자폐가 있었기에 더욱 특별한 에반이의 장애를 거리낌 없이 알렸을 때 직접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일까? 이렇게 자폐의 원인을 부모의 탓으로 돌리는 대화는 미국 문화에서 자라온 사람들에게서는 전혀 들을 수 없었던 것이었고 유독 한인사회에서 만나게 되었던 사람들에게서만 듣게 되었던 안타까운 개인적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큰 차이는 자폐를 보는 성숙한 사회적 인식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자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알리는데 미국은 한국보다 앞서가는 역사를 쓰고 있으며 그렇기에 일반인들 또한 자폐아를 가진 부모들에게 한층 섬세하게 다가갈 줄 아는 예절을 자연스레 갖추고 있는 듯하다.
그에 비해 자폐증을 보는 사회적인 인식이 채 튼튼히 영글어가기도 전에 한국에서는 영화 ‘마라톤’ 등으로 모든 자폐아가 한 가지에 천재적인 소질을 갖고 태어나는 것으로 비춰지고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인어아가씨’나 ‘하얀 거짓말’ 등에서는 엄마의 힘들었던 임신과정이나 아이에 대한 잘못된 교육법이 자폐의 원인이라고 단정 짓고 있기에 자폐아를 둔 한국 부모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아이를 볼지, 아이의 장애사실이 나로 인해 생겼다고 비난할
것이 두려운 마음에 쉽게 장애사실을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대부분의 자폐 장애인들은 100% 완전한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없어 장애를 안고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자신의 아이가 성인이 되어도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없기에 부모들은 언제까지고 아이의 방패막이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그 하루가 지나 일 년이 되고, 그 일 년이 쌓여 수년 후에 결국 자신이 더 이상 아이를 지켜줄 수 없을 때에는 결국 아이의 손을 풀어 사회에 놓아주어야 할 때를 언제나 마음속에 각인하며 살고 있는 것이 자폐아를 둔 나와 같은 부모들이다.
그 각인은 자신의 뼈를 깎는 듯 아픈 고통이며 생각할수록 두렵기까지 한 눈물의 멍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들도 살아야 한다. 그들도 웃는다. 오히려 자폐아를 키우기에 더 웃는 것이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웃음은 마음 안에 깊숙이 숨겨진 그 각인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일반인들이 기억해주면 좋겠다. 그렇다면 악의는 없어도 지나치듯 섣부르게 부모의 탓으로 아이의 자폐가 생긴 것이 아니냐고 하는 어리석은 말들을 조금은 조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벌써 당신은 스스로가 자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로잡는데 큰 역할을 하는 선두 주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