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다녀왔습니다
2011-07-28 (목) 12:00:00
지난번 나를 왜 일만 시키냐고 크게 한번 투덜거렸더니 두 아이들이 급히 돈을 걷어 휴가를 보내주었다. 준비할 것도 없이 기본반찬과 이불만 차에다 싣고 무작정 떠났다. 동부의 그랜드 캐넌인 왓킨스 글렌(Watkins Glen)이 있다는 소문만 듣고 나선 길이다.
산등성이가 겹겹이 주름처럼 접힌 산 애팔레치아 산맥 그 산허리를 롤러코스트 타듯 오르내리며 시간을 풀어놓고 북으로 달렸다. 가는 길에는 징검다리 같은 작은 섬들을 곳곳에 박아놓은 강이 있었고, 순박하게 생긴 작은 호수들이 그 안에 구름을 들여놓은 것도 보았다. 죽어서도 태어난 자리를 못 떠나고 그대로 산이 되어 누워버린 고목들, 그리고 돌보는 이 없어도 더 예쁘고 얌전한 꽃잎을 펼쳐놓은 들꽃들, 자연에서는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었다.
드디어 왓킨스 글렌에 도착했다. 입구의 문을 지나면서 바로 만난 계곡, 그 계곡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 와락 끌어안았다. 더 이상 고치고 다듬을 것 없이 완벽하게 써놓은 한편의 서정시, 그렇게 표현하면 조금은 맞는 말일까? 길이 끊긴 줄도 모르고 달려오던 물은 발을 헛디뎌 깊은 소로 곤두박질을 하고 너럭 바위들은 쉼 없이 물을 지어 나르느라 등이 둥글게 휘어져있었다. 나박김치 처럼 얇게 잘라져 온 산을 끼워 마치고 있는 작은 돌 조각들, 계곡 외길에서 오가며 만난 사람들도 가벼운 목례만 할 뿐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경이로움에 압도되어 모두들 숨소리 말소리조차 죽여가며 걷고 있었다. 참 구석구석이 세련되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계곡이었다.
우리는 그곳뿐만이 아니라 30마일 반경 안에 있는 큰 폭포 두 곳도 찾아가 보았다. 숲이 가려놓은 곳에서 한발을 더 내디뎌 몸을 살짝 틀어보니 폭포(Taughamock Falls)가 큰 키를 자랑하며 저 만치 우뚝 서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와아아아아,” 눈의 동공이 크게 열림과 동시에 그쳐지지 않는 감탄사가 물줄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내 모습을 본 남편은 나이아가라보다 4피트 더 높은 폭포의 큰 키를 두고두고 볼 수 있도록 사진기에 그 위용을 집어넣었다.
그날 밤 우리는 인공의 불빛이 모두 차단 된 숲 속 캠프장에서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미국에 와서 일만 시켜 미안했는지 남편은 밥도 짓고 국도 끓여 소꿉장난하듯 저녁밥을 맛있게 해 주었다. 차 안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누웠지만 그대로 잠들기에는 달빛의 유혹이 너무 강해, 밖으로 후다닥 나와보니, 건너편 산은 어둠보다 더 검게 엎드려 있었고 별들은 나뭇잎 사이사이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희끄무레하게 숲 속 길이 보였다. 멧짐승들이 다니는 저 길 끝 어딘가에는 먹고 살기 위해 고민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눈치 볼 것도 없는 완벽한 자유를 누리는 생명체들이 자고 있겠지. 어떤 것이든 차별하지 않고 받아주는 산의 넉넉한 품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그들이 정말 부럽다.
그날 밤이슬에 옷이 눅눅해질 때까지 숲을 바라보면서 걱정거리들을 한겹 한겹 흰 속이 보일 때까지 다 벗겨냈다. 그런 다음 버리고 털어버린 자만의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큰 심호흡을 하며 맑고 깨끗한 공기를 아주 실컷 들이마셨다. 일찍 일어난 산새들이 콕콕 부리로 어둠을 쪼아 터트리는 소리가 들리는 신 새벽, 잠들어 있던 산의 입주자들이 일어나는지 부산스런 수런거림이 숲 속에서 들려왔다.
산에서 돌아온 후 남편은 사진기 안에 담아 가지고 왔던 그 키 크고 잘생긴 폭포를 바로 꺼내어 액자에 넣어 버렸다. 준비도 없이 무작정 나선 길이었지만 이번 3일 동안의 여름날은 참 아름답고 행복했던 날이었다.
남현실
시인, 락빌/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