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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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이제는 아이를 독립시키자

2011-06-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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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 뉴욕차일드센터 아시안클리닉 부실장, 임상심리치료사

임상이론 수업시간에 미국과 한국 아이들의 양육방식 차이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다. 미국과 영국의 양육이론과 방법론들은 하나 같이 아이의 자율성(Autonomy)을 키워주고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이상적인 양육의 목표로 삼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 부모들은 아이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개인주의를 존중하는 미국문화와 가족과 집단을 중시하는 한국문화의 특성이 양육방법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한국 부모들에게 아이는 부모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더욱이 요즘 같이 아이를 한 두 명만 낳은 저출산 시대에 아이의 존재감은 더욱 커져만 간다. 아이를 조금씩 낳는 데에도 아동관련 비즈니스나 사교육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그만큼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예전에 비해서 훨씬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애지중지 키운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가고 대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부모와 종속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어느 대학의 학과 통폐합을 반대하는 항의집회에 학생들보다 부모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낮은 점수를 준 대학교수에게 부모들이 전화를 해서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직장 선택은 물론 입사 후 직장생활 전반에 관여하기도 하고, 자녀의 연예와 결혼은 부모의 동의와 허락이 내려져야 한다. 한국 부모들과 아이들의 끈끈한 유대관계는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미국인들의 삶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부모-자녀 관계가 차갑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한 후배는 뉴욕방문간호사협회에서 일한다. 혼자 사는 미국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가정을 방문해서 건강을 유지하고 일상생활을 독립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주 업무이다. 외롭게 사는 미국인 노인들 중에는 자녀들이 찾아오지도 않고 심지어 사망한 경우에도 얼마 되지도 않는 유품을 가지고 형제간에 싸움을 일삼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물론 미국 부모들과 아이들을 여느 한국 부모들 못지않게 사랑과 정성으로 양육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열여덟 살이 되어 멀리 대학을 가게 되면서부터 아이들은 독립적인 성인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방학 때가 되면 집에 돌아오지만 졸업 후 직장을 잡게 되면 추
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이나 가까운 가족의 결혼식에 참석할 때를 제외하고는 얼굴 보기가 힘들어진다. 더욱이 미국이 50개 주로 구성되어 있어서 지리적으로 부모와 자식이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예외는 있겠지만 한국 부모들과 아이들과의 관계는 미국인들에 비해서 더욱 가까운 느낌이다. 예전만은 못하더라도 여전히 ‘효’, ‘가족 집단주의’와 같은 사상이 한국인들의 사고와 가족관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부모-자녀간의 살가운 관계는 독특하면서도 긍정적인 측면이다. 가족의 응집력이나 상호의존성은 어려울 때 큰 힘이 되곤 한다. 그러나 지나친 부모-아이간의 종속관계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불러 오기도 한다. 우선 한국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전적으로 희생하기 때문에 아이의 인생에 중요한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며 자녀들이 완전히 독립적인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만약 아이가 커서 미국 아이들처럼 자율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선포라도 한다면 서운한 감정은 물론 배신감마저 느낄 정도이다.

그래서 한국 아이들은 미국 아이들에 비해서 독립적인 삶을 늦은 나이에 시작한다. 홀로서기가 좀처럼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부모세대에 의존해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30세, 40세, 심지어 50세가 되어도 여전히 부모에게 종속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부모가 아이를 의존적으로 키우다 보면 소위 ‘애 어른’ 혹은 ‘철부지’를 만들기도 한다. 가끔 신문에 보면 재산을 분배하지 않는다고 시아버지를 폭행한 며느리나 용돈을 주지 않는 부모를 살해한 패륜적인 사건들이 발생되곤 한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결정해 주고 필요를 공급해 주다보면 아이들은 수동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평생 늙고 힘없는 부모가 자식을 책임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자립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아이를 잘못 키운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한국사회의 독특한 문화와 양육방식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이들을 지나치게 종속적으로 키우는 것은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아이들의 기본적인 성장발달 단계에 맞추어 조금씩 놓아주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아이를 성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피터팬과 같이 평생 아이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과 같다.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멋진 인생은 부모의 사랑과 도움을 통해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결국 그 삶을 만들어가고 지속시키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의 몫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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