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언어들의 교차로에서

2011-05-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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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국에 가게 되었다. 들고 갈 가방을 싼다. 태평양을 건너는 긴 비행시간을 위해 이번엔 한국소설을 갖고 가도 될 것 같다.

떠나기 몇 달 전 비행기 표를 살 때엔 으레 한국어를 좀 더 잘 해보겠다고 다짐한다. 집에서 아내와 연습도 더 하고, 한국드라마도 더 보고, 인터넷에 뜬 뉴스도 읽고, 자기 전에 한국소설 한 두 페이지는 꼭 읽고자 한다. 하지만 전혀 실현된 적이 없다. 항상 일에 쫓겨 한국어 연습에 게을리 하고 만다.

내 한국어 실력은 아직도 사전을 필요로 한다. 잠들기 전, 침대에서 책을 읽다 보면 사전을 찾는 일이 귀찮다. 신혼시절엔 아내에게 물으면 간단하게 해결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모호한 단어의 뜻을 상세히 묻고 답하다 보면 단어 다섯 개쯤에 이르러 서로 피곤하게 되었다.


그래도 그 때 아내는 내가 한국어 공부하는 게 기특해서 참을성을 갖고 도와주었다. 결혼 24년차가 된 요즘은, 단어 다섯 개 중 하나 정도가 꼭 침대에서의 짧은 분쟁을 불러일으킨다. 그 해결책으로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한국어사전을 쓰는데, 그것도 종이책을 읽을 때는 쉽지 않다.

책 두 권을 꺼내 놓았다. 하나는 이 칼럼의 미국인 독자가 추천한 김영하의 ‘퀴즈쇼’다. 작년부터 읽기 시작했으나 또 일에 밀려 조금밖에 읽지 못했다.

다음은 최인훈의 ‘화두’로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 중 하나다. 양장본의 두꺼운 두 권 중 첫 번째 것으로, 시간적 배경이 ‘퀴즈쇼’ 보다 한두 세대 앞섰다. 이 두 권을 다 읽는다면 아내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으련만.

이런 바람은 서로 다른 언어권에서 자란 부부가 갖는 특색의 하나다. 24년 간 결혼생활을 했지만, 나는 한국어 사용자라면 누구라도 읽을 수 있는 아내의 마음 속 어느 한 구석을 잘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비록 아내가 나를 세상 어느 누구 보다도 잘 알고 있기는 해도, 아내는 내가 미국친구들과 1979년도의 밴드들, 어린 시절의 TV 쇼, 당시 학교에서의 유행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 광년의 세월만큼 멀리 떨어져 있음을 느낀다.

이번 비행기 속에서도, 북 캐나다 어딘가를 지날 때 책을 꺼내 한 두 페이지 읽고는 잠들었다가 한국 상공에 이르러 부스스 눈을 뜰 것이다. 그래도 왠지 이번 여행은 다를 것도 같다. 요즘 매일 한국은 물론 한국어에 대해 언급하는 미국인을 만나기 때문이다. 오늘은 새 전산과 강사를 인터뷰 했다. 그는 홍콩에서 왔는데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아내와 함께 한국영화를 즐겨 본다며, 한글의 역사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그 몇 시간 전엔 한 회의에서 일본인 방송학과 교수를 만났는데, 그녀는 이번 여름에 한국 대학에서 영어강의를 맡게 되었다며 지금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했다. 지난주엔 한 학생이 나의 강의를 듣게 해달라고 왔는데, 일본어를 배우다가 한국어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며 혼자 한글을 공부하고 있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도착하면 어디에서나 영어로 꽉 찬 간판들을 보게 될 것이다. 장인께서는 당신 동네의 가게 간판들이 하나 같이 영어로만 써있어서 역겹다고 하셨었다. 나 역시 동감이다. 영화 속에서 보는, 한문과 한글로만 쓰인 1970년 이전의 거리 간판들에서 향수를 느낄 정도가 되었다.

이제 한국에서는 영어가 강조되고 젊은이들이 영어를 편하게 느낌에 따라, 내 한국어는 덜 쓰이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어 실력 닦는 일에 점점 게을러지고, 두꺼운 한국 책을 여는 일도 더욱 어렵게 되었다.


케빈 커비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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