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머니로서의 삶

2011-05-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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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생각하며

이번 어머니날은 다른 해보다 내게는 의미 있는 날이다. 태국 방콕에서 태권이가 태어났을 때 남편은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 두었다. 병원에서 집에 돌아오자 남편은 내 손에 조그만 선물을 쥐어주었다. 가만히 손바닥을 펴보니 반짝 빛을 발하는 롤렉스 금시계였다. 시계의 뒤판에는 아들이 태어난 날자가 새겨져있어, 그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금시계를 이번 어머니날에 두 손녀의 엄마인 큰며느리에게 선물하려한다. 비록 내가 41년 동안 팔목에 차고 있었지만, 며느리는 사랑하는 남편의 생일날이 새겨진 구식 스타일의 금시계를 감동으로 받을 것이 분명한, 속이 깊은 성격이다.

내게는 귀중한 시계를 며느리가 첫아이를 낳았을 때 바로 주지 못한 것은, 그녀가 처녀시절의 자유로운 생활과 딸로서, 아내로서 사랑을 받기만 하던 화려한 생활에서 이제 인내와 희생과 책임감으로 마음을 다잡고 무한사랑과 절도 있는 생활로 막중한 육아와 교육을 감당해야 하는 생활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지 지켜보려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며느리는 두 아이의 엄마로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의 일도 훌륭하게 잘 해내고 있다.


1967년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태어난 지 2달된 딸을 데리고 임지인 방콕으로 가서 딸을 키우며 생활할 때 대화할 친구도 없고 신문도 없는, 더구나 밤마다 책을 읽어야 잠을 자는 내게 책도 없이 매주 화려한 파티가 계속되는 분주한 생활이 몹시 힘들었었다. 남편은 이 모든 어려움을 해결할 책을 서울에서 주문해 주었다. 바로 몽테뉴의 ‘수상록’ 3권이다. 그 책은 딸이 잠들 때면 펴보는 내 친구이고, 교육의 지침서며, 철학적 사색의 길을 열어주는 현명한 멘토였다.

또 다른 하나는 1960년대 말 어머님이 보내주신 편지이다. 그 당시 바쁜 스케줄의 생활에다 3자녀의 엄마로서 매일 매일 파김치처럼 곤죽이 되는 피곤의 연속이었다. 어머님의 편지에는 “남편의 성공이 너의 성공이므로 참고 견디며 뒷바라지를 잘해주라”는 당부와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 인생의 보람이라는 말씀이 적혀있었다. 어머님 편지는 내게 많은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그 귀중한 편지는 지금은 없어지고 내 마음에만 간직되어 있다.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끌고 갈 첨단문명의 세계는, 태엽을 감아야지 돌아가는 옛 스위스 시계처럼 아날로그에 안주하려는 우리에게 불안감은 안겨준다. 이 복잡하고 아찔한 급류 속에 휩쓸려 살면서도 우리 여성들에게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가치는 가족들이 건강하고 화목하게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직업과 사회활동에 쫓기면서 사는 오늘날의 여성들이지만 사랑과 이해로 뒤안길에서 최선을 다하며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그 개성에 따라 좌표를 일러주는 엄마의 위치라면 그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김인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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