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멜 깁슨)가 손에 낀 비버 인형을 통해 아내(조디 포스터)와 대화를 한다.
★★★ (5개 만점)
우울증 남자의 ‘극적인 재생’
멜 깁슨 실제 삶 반영한 듯한 드라마
참으로 희한한 영화다. 최근 동거녀에 대한 폭행혐의로 기소된 뒤 스스로 유죄를 인정한 멜 깁슨이 주연하고 그의 친구 조디 포스터가 감독하고 공연한 심한 우울증에 빠진 남자의 재생을 그린 드라마로 여러 가지로 깁슨의 실제 삶을 반영한 듯한 면이 있는 드라마다.
내용이 관객의 가슴을 파고들면서 감정에 호소해야 하는 것인데도 포스터의 연출이 일관성이 없고 중구난방식이어서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병적인 우울증에 걸린 남자가 손에 낀 인형을 통해 타인과 대화를 나누는 얘기 자체도 괴이한지만 그가 이같은 특이한 수단을 통해 자신의 질병을 극복하고 정상인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이 유연하지 못하고 또 신빙성도 모자라 생경감을 느끼게 한다.
하나 볼 것이 있다면 깁슨의 나무랄 데 없는 연기. 영육을 소진하는 대단한 연기다. 깁슨과 얄궂은 내용 그리고 포스터의 연출작이라는 점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은 하나 대중에게 어필할 작품은 아니다.
처음에 망해가는 장난감 제조회사의 회장인 월터(깁슨)의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여 주는 여러 가지 장면이 몽타주로 펼쳐진다. 그는 하루 종일 잠만 자고 때로는 자기 몸에 채찍질을 한다.
이런 꼴을 옆에서 보며 고통 하는 사람이 월터의 아내 머레디스(포스터)와 어린 둘째 아들 헨리. 고교 3년생인 월터의 장남 포터(안톤 옐친)는 아예 아버지 보기를 사갈시하면서 자신과 아버지와 공통점을 일일이 자기방 벽에 붙여 놓고 이를 하나씩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마침내 집에서 쫓겨난 월터는 리커스토어에서 술을 사 나오다가 쓰레기통에 있는 낡은 비버(해리) 손 인형을 발견, 이를 집어 들고 호텔방으로 돌아온다. 월터가 손에 비버를 낀 채 만취해 발코니에서 투신자살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비버가 월터에게 말을 건넨다.
이때부터 월터는 외출을 하거나 회사에 갈 때도 반드시 비버를 손에 끼고 다니면서 비버를 통해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 인형 비버가 월터의 정신을 점령한 것일까 아니면 월터의 마음이 비버를 통해 표현되는 것일까. 이런 내용과 함께 후에 월터가 비버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극단적인 수단은 ‘트와일라이트 존’에서나 있음직한 일이다.
월터는 비버를 통해 급격히 정상인(?)이 되면서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헨리의 사랑을 되찾는데 머레디스와 로맨스의 불꽃이 재점화돼 섹스를 할 때도 비버를 손에 끼고 한다. 그리고 새 아이디어 개발로 회사가 부흥하면서 월터는 매스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다.
이와 함께 글 실력이 뛰어나 동급생들의 작문을 돈을 받고 대신해 주는 포터에게 졸업식 연설을 할 치어리더이자 모범생인 노라(제퍼 로렌스)가 자기 연설문을 써 달라고 하면서 둘의 관계가 큰 서브플롯으로 등장한다. 이 플롯이 월터의 얘기를 상당히 잠식해 마치 두 개의 얘기를 보는 느낌이다. 진지한 드라마인지 아니면 소극인지 잘 모르겠는데 여하튼 깁슨의 연기 하나는 훌륭하다. PG-13. Summit. 아크라이트(선셋과 바인)와 랜드마크(310-282-8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