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비무장 상태에서 미군에 사살된 것으로 알려지자 아랍권 무슬림들 사이에 분노가 커지고 있다.
사살 소식이 알려진 직후만 해도 많은 무슬림들은 이슬람을 테러리즘과 동일하게 인식하도록 만든 장본인의 죽음을 반기는 분위기였지만 사살 방식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빈 라덴에 대한 동정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이라크에서 반미 무장투쟁에 참여했던 아부 알-아베드는 로이터통신을 통해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사살할 수 있느냐"며 "이번 일로 빈 라덴을 동정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당국은 지난 1일 미군의 작전 당시 빈 라덴이 최후 순간까지 파키스탄 자신의 은신처에서 총격전에 참여하며 저항하다 사살됐다고 밝혔다가 지난 3일엔 빈 라덴이 비무장 상태에서 사살됐다고 정정했다.
현장에 있었던 빈 라덴의 12살 딸도 "미군이 1층에 있던 빈 라덴을 생포한 뒤 가족들 앞에서 사살했다"고 파키스탄 정보당국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해군 네이비실 대원들이 빈 라덴 은신처를 급습했을 당시 빈 라덴 측근들이 총격 대응 조차 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파키스탄의 한 관리는 아랍권 위성 보도 채널 알-아라비야를 통해 "단 한 발의 총알도 미군이나 미군 헬기를 향해 발사되지 않았다"며 작전 중 추락했던 미군 헬기도 총격 때문이 아니라 기술적 결함 때문에 추락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빈 라덴 시신에 대한 미군의 시신 처리 방식을 놓고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사망 후 24시간 내에 매장하는 이슬람 관례를 존중, 빈 라덴의 시신을 아라비아해로 옮겨 신속히 수장했다고 설명했지만, 이슬람권 학자들은 수장이 무슬림의 정서에 맞지 않는 방식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레바논 성직자 오마르 바크리 모하마드는 "미국인은 이런 방식의 수장을 통해 무슬림들에게 굴욕을 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분노했다. 이집트 카이로의 종교지도자(이맘) 아흐마드 알-타이브도 "빈 라덴의 수장 방식은 이슬람법의 원칙과 종교적 가치, 인도주의적 양식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슬람 교리에 따르면 사망 당일 일몰 이전에 주검의 머리가 성지 메카 쪽을 향하도록 눕혀 매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 다만 먼 바다를 항해 중인 선박 안에서 숨졌을 경우 신속한 장례를 위해 수장 방식도 허용된다.
그러나 빈 라덴의 경우 파키스탄 육지에서 사살됐기 때문에 미군이 시신을 헬기로 옮기면서까지 수장할 필요는 없었다고 무슬림들은 주장하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 언론인 아셈 알-캄디는 "이슬람권에서 시신을 바다에 던져버리는 전통은 없다"며 "미국이 기소 없이 그를 살해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바이=연합뉴스) 강종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