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은주 뉴욕한인교사회 회장
초등학교 때 이민 온 한인 1.5세나 2세들 사이에 자주 쓰이는 용어들이 있다. 갓 이민 온 한국촌놈이란 뜻의 ‘팝(FOB·Fresh-Off-the-Boat),’ 겉은 피부색이 노란 동양인인데 속은 백인사상을 가진 자란 뜻을 담은 ‘바나나’나 ‘트윙키(흰 크림이 든 노란 빵),’ 겉은 검은색인데 안에는 하얀 크림이 발라진 쿠키에 비유한 ‘오키오(OREO),’ 또는 ‘ABC(America-born-Chinese)’ 등의 은어들이 대표적이다.
한인 1.5·2세끼리 이야기 할 때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서로간에 통하는 관점과 내용을 이해하게 된다.최근에 개인적으로 알게 된 한인 1세 출신의 한 문인은 자신의 아들이 한국인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써서 눈길을 끌었다. 이유는 ‘나의 눈에 비친 한국 여자들은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며 욕심과 사치심이 많고 남을 고려하는 마음이나 봉사정신이 없어 보
였다’는 것이었다. 이 분의 관점에서는 충분히 한인여성이 이렇게 비춰졌을 수도 있고 한인여성인 나도 동감하는 부분이 있긴 하다.
어린 시절 나와 내 여동생들도 "죽으면 죽었지 한국남자랑은 절대로 결혼 안 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당시 우리 눈에 비춰진 한국 남자는 마마보이, 쇼비니스트, 우월주의자, 자격지심 가득 찬 겁쟁이, 영어도 못해 어디 데리고 다니면 답답한 사람, 여자를 하인으로 착각하는 이상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였고 게다가 생활력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늘 친구들과 이야기 할 때면 "너는 왜 FOB이랑 사귀니?" 또는 "저 남자는 여기서 태어났는데 어떻게 저렇게 한국식으로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 행동을 할까?" 등 한인 남학생들은 아예 장래 배우자감 후보에서 제외시키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아들이 한국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원치 않는 한인 1세 아버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감한다. 이렇게 우리는 한 동포끼리 서로를 선호하지 않고 살고 있을 때가 많다. 말로는 정체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나부터도 때로 한국식 사고방식 등 한국적인 것이 몸에 안 맞게 느껴질 때가 많다. 또한 반면에 특히 여행을 다닐 때마다 김치나 고추장의 중독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매운 소스를 사용하는 식당에 가서 무조건 매운 음식을 찾는 한국인의 모습 역시 바로 우리 1.5·2세이기도 하다.
언젠가 혼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하던 시기에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부산에서 온 한인학생들과 볶은 고추장과 맥주를 바꿔 먹은 적이 있었다. 수개월 동안 입에 담지도 못했던 볶은 고추장을 혀로 맛보는 순간 나는 ‘고추장 중독자‘로 변해 한꺼번에 고추장 한 통을 다 먹고 밤새 배탈이 나서 고생하면서도 무척 행복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비로서 나는 마약이나 알콜 중독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그런 측면에서 보면 의외로 우리 한국민족도 핵가족 구조에서 벗어난 가정이 미주 한인사회에도 많다. 배 다른 형제와 복잡한 가정 관계로 이뤄진 가족, 혼혈의 피가 자신의 조상에게 있으면서도 혼혈인을 차별하는 한국인, 그리고 ‘한 민족, 한 얼, 한 피’를 선호하면서도 자기 자식은 어떻게 하지 못하는 한국인 1세대의 안타까움도 많이 본다.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에 어느 한국인 학자가 한국인 대학생 남성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러분, 외국남성들이 우리 한국인 여성을 다 차지하고 빼앗아 가기 전에 빨리 정신 차리고 한국인 여성을 꼭 잡으세요"라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옛 말처럼 자기 자식도 어떻게 하지 못하면 남을 먼저 자신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나 자신도 때론 그런 모습을 발견하다. 나는 과연 어떤 색깔의 한국인일까? 어떠한 양념에 버무려진 한국인일까? 아니면 한국인라는 독특한 민족성은 없고 계속 흘러가는 것이 민족성인 것일까?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나와 가정, 한인사회에 대한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