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월의 노래

2011-04-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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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 박목월 선생의 ‘4월의 시’를 노래처럼 읊조린다. 3월 내내 흩뿌리던 찬비가 그치고 바야흐로 봄 하늘이 열렸다. 마당 한 가운데 서니 넉넉히 자란 자목련 나무에 꽃송이들이 활짝 피었다. 마치 초파일 등불 같다. 연보랏빛 꽃 살을 아기 볼인 양 어루만지며 오랜 외출에서 돌아온 봄을 반긴다.

‘4월은 생명의 등불’이란 귀절을 소리 내어 낭송해 본다. 냉이 맛 같은 산천 기운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오랜 세월 익숙한 시인데도 오늘 아침엔 유독 나를 위해 아내가 막 끓여준 나물국 같다. 한해의 첫 4반기를 엉거주춤 보냈음에도 4월이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다시 돌아와 준 게 고맙다. 내 삶에 생명력을 다시 불어 넣어야겠다는 결심을 등불처럼 켠다.

이런 생각은 지난주에 들은 H교수의 동양의학 원론 강의 덕인 듯 하다. 그는 보기 드문 태양인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기발한 생각이 가득 찬 탓인지 유달리 머리가 크고 안광이 형형하다. 생각이 혀를 앞지르는 탓에 가끔 말을 더듬는데 강론은 대하처럼 거침이 없다. 그는 4월 첫 강의 날 칠판에 가죽, 혁(革)자를 크게 썼다.

혁(革)자는 짐승의 껍데기를 홀딱 벗긴 가죽이란 뜻이다. 그래서 혁신(革新)이나 개혁은 환골탈태, 이노베이션을 의미한다. 그런데 글을 자세히 보면, 날개를 편 새 모양도 닮았다. 그는 솔개의 우화를 소개했다. 솔개가 70세까지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40쯤에 환골탈태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사냥에 무디어진 부리와 발톱을 바위틈에 넣고 깨부수어 새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30년 수명을 더 누린다는 것이다. 이는 조류의 생태적 설명이라기보다 과감한 희생을 통한 혁신만이 살길이란 뜻을 담은 우화일 것이다.

사람의 수명을 대폭 늘린 것은 물의 소독이었다. 18~19세기 때 병원체에 감염된 물 때문에 콜레라 같은 수인성 전염병의 창궐로 인간수명은 30~40살 남짓했다. 지금은 위생적 환경과 식생활 개선 등으로 수명이 2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아직도 스트레스가 주요인이라는 암과 같은 질병들 때문에 수명연장에 급진전을 못보고 있다.

앞으로 획기적인 인간의 수명 연장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줄기세포로 키운 장기로 병든 장기를 대체하는 생명공학술이나 암세포를 추적, 치유하는 나노기술이 그 해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H교수는 인간들이 끊임없는 자기개혁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덜어내고, 정신을 바로 세워 마음과 육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 더 순리적이란 가르침을 준다. 철이 바뀔 때 마다 내 껍데기와 허물을 벗겨가는 노력이 생명의 등불을 밝히는 길이란 뜻일 게다.

4월은 그동안 남에게 상처만 주었던 나의 모진 부리와 손톱, 그리고 남을 씹기만 했던 이빨까지 갈아 치우는 환골탈태의 달이다. 이 계절에 껍데기를 벗고 혁신하길 소원한다.


김희봉
환경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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