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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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와 기회

2011-04-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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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 칼럼

나는 스포츠를 좋아한다. 위기상황을 맞아 긴장의 순간이 오면 마치 나 자신이 그 순간에 있는 듯한 기분으로 손과 가슴이 졸아드는 느낌에 그 순간을 도망치고 싶은 생각과 그 순간을 이겨내고 영광의 기쁨을 느껴보고 싶은 생각사이를 방황하며 스포츠를 즐긴다.

그러한 순간에 해설자의 말은 늘 비슷하다. 게임을 많이 해본 중견선수이기에 쉽게 위기를 이겨낼 것이라는 내용과 어린 초년생 선수가 어떻게 이겨나갈지 궁금하다는 해설자의 초점은 결국 ‘경험’에서 오는 위기관리능력을 말하고 있다.

테니스나 골프처럼 개인경기에서 세계의 일인자가 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일인자와의 맞대결인 것이다.

일인자를 이길 실력에 의심이 있고 패배가 두려워 피한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 세계 일인자의 자리이다. 농구나 야구와 같이 단체경기에서도 마지막 순간에 팀을 구하게 되는 위기의 순간을 택하지 않으면 영광의 순간은 오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 내에서 승패를 갈라야 하는 스포츠에서는 위기와 영광의 관계가 쉽게 이해가 되고 무한한 것은 아니라도 오늘이 아니면 내일 또다시 새로운 게임의 기회가 있다는 믿음 때문에 더 쉽게 위기상황에 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이 스포츠 게임과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2시간여로 짧은 스포츠와는 달리 긴 인생에서는 영광을 가져다 줄 위기의 중요성을 알기가 쉽지 않다.

또한 인생은 스포츠처럼 하루가 지나면 모든 사람이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기회가 다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게임에서는 신중하게 성공의 길을 택하며 위기는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는 실패의 가능성을 최대한 배재한 상황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훌륭한 부모라고 생각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위기는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육의 기회와 성공을 통해 학습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는 최고의 교육기회인데 그것을 배제한 양육법은 학문뿐만 아니라 인성까지 배워야 하는 자녀의 학습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장애자녀의 교육은 비장애자녀의 경우보다 부모의 마음이 좀 더 복잡하다.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녀인 데다가 부모의 죄책감까지 더해 부모의 보호심리는 극도로 민감해있다.

또 장애로 인해 이웃과 또래 아동들로부터 무시당하는 것이 부모 자신이 무시를 당하는 것으로 동일시되고 장애자녀의 미래를 맡기고 의지할 곳이 없는 사회를 볼 때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기가 힘들다.
이러한 마음은 부모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교육과 훈련을 담당하는 교사나 봉사자나 훈련 담당자들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도 위기를 통해야만 배울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얼마 전 카페에 올라온 글을 읽었다. 장애인과 함께 지역사회 통합훈련을 위해 지역사회 활동을 나가면 장애인을 무시하고 싫어하는 눈치를 주는 사람들 때문에 이들을 위한 특별한 공간을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글이었다. 나의 생각을 다르다.

장애인들이 눈총을 받건 무시를 당하건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거기에 있고 비장애인의 눈에 자꾸 띄는 기회를 통해 언젠가는 비장애인들이 자신의 태도가 잘못 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도 거기에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장애인을 두고 사람들에게 불우한 이웃을 도우라는 것은 오히려 장애인을 비인격적인 존재로 하락시키는 일이다. 무시를 당하더라도 함께 하며 뭔가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기회를 통해 사회를 교육하고 변화시켜 나갈 기회를 잡아야 한다.

장애인이 사회의 편견을 피해 따로 쉴 곳을 마련하자는 생각 뒤에는 장애인을 돌보고 교육해야 하는 사람 스스로의 자존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효선
<칼스테이트 LA특수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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