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농부의 인고(忍苦)를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봄에 일찌감치 골을 고르고 씨앗을 뿌린 후, 김매고 거름 주고 벌레가 먹지 않도록 소독하고, 더러는 가지 치며 순 고르고 접붙이기까지 하고, 그러고도 쥐 떼와 새떼에게 뜯기고, 나머지도 가뭄 태풍 없이 잘 영글어야 가을에 겨우 추수를 할 수 있는 기다림과 그 고통스런 노동.
그나마 빚이나 지지 않고 농사를 잘 짓고, 모든 것 제(除)하고나면 겨우 먹고 살 양식이 고작이었다.
우리 속담에 “우물에 가서 숭늉 달란다”는 말이 있다. 너무 급한 성질을 비꼬아 하는 말이다.
급해서 좋은 것이 있는가 하면 급하게 굴면 일을 망치는 것이 있다.
우리는 현재 고도의 경쟁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뒤 늦게 선진 대열에 든 우리로서는 모든 것이 급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선진국들과 행보를 맞추기 위해 조급한 마음으로 경쟁을 하다보니 ‘빨리 빨리’가 입버릇처럼 우리 체질에 물들게 되었고, 우리 조상들이 살아 온 ‘의젓하게 천천히 살아 온 생(生)’이 의미 없게 되었다. 남들이 다하는 21세기의 일각에서 한 마디로 정신없이 살면서 달려 온 것이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느리게 산다는 것에 무게를 둔다는 자체가 모순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보아야 하는 조건부 해석이 불가피하다. 추운 겨울철 양식을 마련하기 위하여 더운 여름에 땀을 흘리면서 부지런히 일하는 개미의 근면성은 높이 평가되어야 하지만, 그와 반대로 아무 대책 없이 시원한 나무 밑에서 노래만 하는 베짱이의 게으른 태도는 분명히 무능력하고 게으르다고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저께, 어니 젤린스키가 쓴 ‘느리게 사는 즐거움’ 을 읽으면서 신선한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시간과 경제적인 문제를 앞세워 한가롭고 여유 있는 삶을 등한시했던 나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삶을 즐기기 위해 정작 필요한 것은 많은 돈이나 남아도는 시간이 아니라 잠깐의 여유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위기의 순간이라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중요하고 즐거운 일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불건전한 오락이나 에너지 소모, 무엇보다 시간 낭비 같은 요소를 없애야 하며, 인생에서 보다 많은 보람된 시간을 창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속도를 늦추며 오직 그 순간을 즐기면 된다는 것이다. 미래에 어떻게 사느냐는 것보다는 현재 얼마나 잘 살고 있느냐가 더 소중하다는 것이다.
아침에 남보다 일찍 일어나 넉넉한 시간을 즐기며 대중교통의 수단으로 여유 있고 느긋하게 출근하는 당신은 하루를 즐겁고 힘차게 보낼 것이라는 희망과 자신감으로 가득 찬 가슴을 설레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직장을 향할 것이다.
아침에 기상하여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한 번만이라도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머리를 빗고 얼굴을 매만져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남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는가? 이른 새벽 출근길에 도로변을 청소하는 환경 미화원의 부지런함 속에서 느긋한 느림의 미학을 느끼지 못한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인생을 바쁘게 살아 왔다는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항상 마음만 바빠 몸이 허둥지둥하는 하다 보면 항상 쫓기는 듯한 멍에에 얽매어 살아 갈 것이므로 자기 본연의 모습을 의식하지 못한 채 허망하게 살아가는 빈껍데기 인생을 살아 갈 가능성이 높다. 느긋하고 차분한 사람만이 빈틈없이 일을 처리 할 수 있다. 느긋해야 제대로 생각하고 차분해야 제대로 판단한다.
우리는 정보화, 세계화 시대의 급속한 변화 속에 살고 있다지만 이런 와중에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토끼보다 지혜로운 거북이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의 내면세계를 차분히 되돌아보며 진짜 느리게 사는 지혜와 용기를 가져 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