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동추야’노래하는 핸드폰

2011-03-11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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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란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오래전 미국에 핸드폰이 나오고 얼마 지나서 나이 먹은 이들은 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젊은이들에게는 핸드폰이 하나의 자존심이고 멋이던 시절이 있었다. 갖가지 디자인이나 독특한 색깔들은 젊은이들의 욕심을 채워주기에 충분했었다. 특히 그 당시 한국에는 이미 방방곡곡에 퍼져서 그야말로 핸드폰 안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어쩌다 서울 거리를 걸으면 버스 안에서도, 또 길을 걸으며,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서도 전화가 떠나지를 않았다. 동대문 시장에 가니 1,000원(1불)짜리 주걱을 바닥에 펴놓고 파는 아주머니들도 모두 비싼 핸드폰 하나씩 들고 물건도 안 팔고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대화는 끝이 없었다.
그 후 미국에 돌아온 어느 날 밤, 나는 집 가까이서 예상치 않게 강도를 당했다. 이상하게 한 차가 큰길에서부터 내 뒤에 가까이 따라오는 것이었다. 느낌이 이상하고 직감적으로 불길한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어서 그 차는 내차를 세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뒤에서 내차를 받았다. 차가 망가졌나 놀라서 나갔을 때 그들은 칼을 가지고 있었고, 술 냄새가 진동했다. 가방을 통째로 달라고 하면서 핸드폰은 어디 있냐고 한다. 핸드폰이 아직 없다고 했더니, 아니 돈 벌어서 핸드폰도 하나 안사고 뭐하냐고 야단을 치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전화기도 비싸지만 매달 유지비도 제법 비쌌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우리 아들은 자기 직장 그룹으로 해서 내 전화기를 사다주었다. 물론 지금은 패밀리 플랜으로 무척 싸졌지만 남편은 같은 곳에서 함께 일하고 집에도 함께 와서,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 함께 있으니 자기는 전화기가 필요 없다고 고집해서 정말 여태 전화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 내 전화기를 최신형으로 바꾸면서 남편도 핸드폰을 갖게 되었다. 그는 새로운 전화번호들을 입력해 넣으며 몇 번이고 내 전화번호를 묻는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제 부터는 마누라한테 할 말 있는 것은 특히 불평은 리스트를 만들어서 전화로 걸어 빨리 모두 얘기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얼른 끊어버려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내 잔소리 안 들어도 되고 내가 할 얘기가 있으면 전화를 걸으라고 해놓고 전화가 오면 그때는 안 받고 얼른 딴 데로 가버린다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나 참 기가 막혀서.
어떤 남편이 마누라가 전화를 걸어서 집에 올 때 그로서리 점에 들려 이것저것 몇 가지를 사오고 책방에 들러서 잡지도 한 권 사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책방의 여점원이 그에게 묻는다. “아저씨, 무슨 책 찾으세요?" “어떻게 하면 내가 집에서 큰소리 치고 보스 노릇을 할 수 있나 하는 책이 있나 해서요." 그때 점원의 대답은 “그런 책은 저기 공상 과학 섹션에 있을지도 모르니 저쪽 끝을 한번 보세요. 아이구, 아저씨 꿈도 야무지시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가하면 어떤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유행가나 명곡이 멋지게 연주되기도 한다. 어떤 회사원이 회장님 아버지 장례식에서 깜빡 잊고 전화기를 끄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하고 있는데 때맞추어 마누라가 전화를 했다. 그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야." 모든 이들은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노래는 계속 나오고 당황해서인가 전화는 더 빨리 꺼지지 않는다. 다음날 회장님 사무실에 불려간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아니 그 노래가 우리 아버님 생전에 제일 좋아하시던 노래인지 자네가 어찌 알았지. 아버지가 무척 좋아하셨을 거야. 고마워. 그리고 앞으로 잘 지내자고”
약국에 오는 한 미국인 손님은 와이프가 감기에 걸려 말을 잘 못하니 집안이 조용하다면서, 너무 잘 듣는 약 주지 말라며 웃는다. 그가 약을 지은 후 리비아의 대학살 얘기를 하는데 마누라한테서 전화가 와서 언제 감기약 가져 오냐고 묻는다. 지금 여기 약국이 바빠서 아직 기다린다고 약간 거짓말을 하는 그는 리비아, 이집트, 튀니지 얘기를 계속한다. 그래도 떠나기 전에 그는 약을 카운터에서 집으며“나 이것 안 가지고 집에 가면 오늘 프라이팬으로 뒤통수 맞는다”라며 급히 약국 문을 나서며 우리 부부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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