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1-03-0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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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주 워싱턴 문인회

구전(口傳)에 80세 넘으면 남의 나이를 산다고 하는 말이 있다. 옛날 60환갑 살기도 어렵던 시절 장수를 덤으로 생각하여 축수하여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덤은 주로 작은 거래에서 이뤄진다. 시장 바닥의 민초들의 장바구니 사이에서 형성된다. 적은 물건을 낱개로 사고팔고 하는 소매과정에서 흔히 본다. 덤 속에는 “또 오세요” 하는 은근한 요구도 담겨 있다. 덤을 받으면 싫지 않다. 이런 욕구심리를 이용하여 어느새 끼워 팔기가 유행하며 심지어 사기성까지 조성하여, 덤이 언짢게 부작용을 일으켜 사회를 어둡게 하는 일들도 종종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큰 덤을 경계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나도 덤을 즐겨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이것도 나이와 무관한 것 같지는 않다. 그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이발이다. 젊었을 때 제법 신경을 쓰던 두상 관리가 차츰 관심에서 멀어졌다. 치크, 포마드를 찍어 바르며 고데하고 염색하며 수선 떨던 일들이 옛날이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보름에 한 번씩 그리고 고급 이발소는 아니라도 대중 이발소에 가서, 이렇게 저렇게 높게 낮게 머리형에 대하여 이발사에게 잔소리(?)를 하며 이발이 끝날 때까지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았었는데 이제 나이를 먹어서인지 그전처럼 머리 모양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늙으면 확실히 자신감을 상실하는가 보다. 조금씩 “옛날과 다르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이발 도수도 거의 한 달에 한 번 할 정도다.
미용학원 학원생들의 실습 모델이 된지도 벌써 오래 되었다. 어느 날 같은 노인 아파트에 사는 분을 따라서 이발하러 간 곳이 우리 아파트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미용학원이었다.
학원생들이 신경을 쓰며 머리를 깎는 동안 학원 선생님들은 열심히 학원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손님 어떻게 깎아 드릴까요?” 하고 물어왔으나 그것도 교육과정에 필수로 가르치는 인사 말 같다. 결과는 실습생의 멋대로 깎았다. 아마도 옛날 같았으면 이발사에게 투덜거리고 핀잔을 줬음직하다.
그런데도 그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지금까지 미용학원을 이용하고 있다. 거기에는 덤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머리를 깎을 때 노란 카드를 내어주며 10번을 깎으면 한 번 공(덤)으로 깎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이발소에 비에 이발료가 절반도 안 되는 6불, 엄청 싸다. 거기에다 10번을 깎으면 덤을 준다니, 싼 이발요금에 덤이 올무가 됐는지 그동안 여러 번 덤으로 이발했다. 갈 때마다 이발사의 얼굴도 바뀐다. 그런고로 이발 스타일도 또 다르게 마련이다. 그래도 일편단심 꾸준하게 미용학원으로 간다. 더 갈 이유가 생겼다. 다름 아니라 이제부터는 10번에 한 번하던 덤을 5번에 덤을 준다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역시 덤의 매력은 있다. 머리의 모양보다 싼 이발료와 덤이 더 친근해 지는 것 같다. 이런 느슨한 생각도 늙은 나이 탓인 것 같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까치머리로 깎았어도 나는 항상 두상에 베레모를 얹고 다니니 또 염려를 놓을 수 있다.
덤은 역시 잔잔한 정을 끌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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