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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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세지 말자

2011-03-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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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속도를 체감한다. 40세가 되면 시간이 40마일로 달리고, 60세가 되면 60마일로 지나간다는 말이 실감난다.

시간을 실은 세월이란 열차는 막을 재간이 없이 자꾸 달려만 간다. 그러나 시간은 산 사람에게만 주어진 귀중한 선물이요, 시간 속에 있다는 그 자체가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동갑내기 친구가 말한다. 한 살 먹으면 한 살 만큼 젊어질 수 없을까? 예를 들어 70세에 한 살 더 먹으면 69세가 되는 식이다.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점점 젊어져서 다시 한 번 인생의 멋진 꿈을 꿀 수 있을 텐데 라고 한다.


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스캇 피츠제럴드라는 작가의 작품 ‘벤자민 버튼의 이상한 케이스’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바로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경우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묘사한 내용이다. 소설의 결말은 결국 가족의 비극이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시간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나온 날보다 앞으로의 날이 적어지는 데서 시간의 낭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결연한 자각 같은 것이 고개를 든다.

나이에는 육체적 나이와 정신적인 나이가 있다. 젊은데도 늙은이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고 늙었는데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싱싱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이런 현상은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얼마나 늙은이처럼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내 경우는 늙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우아하게 늙고 싶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육체의 나이는 70 고개에 있으나, 내 정신적인 나이는 아직도 철이 덜난 미숙아 같아서 우아 하고는 거리가 있다.

그래도 나는 지금 이 나이가 참으로 좋다. 나 편한 대로 헐렁하고 가볍게 또 자유롭게 살 수 있어 좋고, 자녀에 대한 경제적 책임이 없으므로 하기 싫은 일은 안 해도 되는 마음의 평화도 좋다. 사소한 일에도 감동하며 감사하게 되는 것, 또 눈물이 흔해진 것도 좋다.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처럼 사랑과 우정이 발효된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것도 좋고, 문학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내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인 것도 좋고. 외로움이 내 문학에 탯줄이 된 것도 좋다.

시간을 충실하게 만드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며 쉬임없이 흘러서 가버린다. 물처럼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여 선용할 때 비로소 그 시간은 살아있는 내 것이 된다.

’인생 100세’ 시대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미래의 주인공은 젊은이만이 아니다. 나이가 70세든 80세든 오늘을 힘차게 사는 사람이면 모두 미래의 주역이다. 그러니 더 이상 나이를 세며 노을 같은 인생이라고 슬퍼하지 말고 새 꿈을 꾸자. 어차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은가.


김영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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