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발한 스토리 전개 ‘요절복통’

2011-02-23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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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오페라 첫 무대 로시니 ‘이탈리아의 터키인’

기발한 스토리 전개 ‘요절복통’

세 남자가 피오릴라(니노 마차이제)를 차지하려 다투고 있다. 왼쪽부터 터키왕자 셀림(사이몬 알베르기니), 애인 돈 나르치오(막심 미로노프), 남편 돈 제로니오(파올로 가바넬리).

■ 공연 리뷰

정말 오랜만에 오페라를 보면서 깔깔 대고 웃었다.

지난 19일 뮤직센터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LA오페라가 처음 무대에 올린 로시니의 ‘이탈리아의 터키인’(Il Turco in Italia)은 영화로 치자면 ‘슬리퍼’ 히트작, 별 기대 없이 봤는데 ‘대박’의 예감을 안겨준 공연이다.


이런게 프로덕션의 힘일까. 크리스토프 로이(Christof Loy) 감독의 바바리안 스테이트 오페라 프로덕션을 가져온 이 공연은 첫 장면부터 피날레까지 어찌나 귀엽고 코믹하고 스마트 하던지, 이렇게 재미있는 오페라가 이제껏 LA에서 한번도 공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독일인 감독 크리스토프 로이는 유럽 오페라 계에서는 대단히 유명한 연출가인데 미국무대는 이번이 데뷔라고 한다. 앞으로 그가 만든 작품이 오면 무조건 보러갈 예정이다.

자유분방한 유부녀의 사랑놀이를 그린 ‘이탈리아의 터키인’은 1814년 라 스칼라에서 초연됐을 때부터 식상한 소재와 특별날 것이 없는 오페라로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던 모양이다.

스토리 전개가 기발하고 아름다운 서곡과 화려한 콜로라투라 곡들이 많이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공연되지 않아온 작품인데, 무대를 1960년대 즐겁고 정겨운 이태리 시골 항구도시로 옮긴 이 프로덕션은 거의 3시간에 이르는 공연 내내 관객을 쥐락펴락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벨칸토 아리아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특히 창의력이 돋보이는 세트와 재미있는 의상, 여기저기 수많은 코믹 터치와 작은 디테일이 감탄스러웠으며, 수많은 엑스트라 등장인물들이 제각각 보여주는 연기(때때로 정지동작과 슬로 모션)조차 특별한 공연이었다.

제임스 콘론(James Conlon)이 열정적으로 지휘한 음악도 아주 좋았다. 많이 공연되지 않는 관계로 귀에 익은 아리아는 없었지만 여주인공 피오릴라 역을 맡아 열연한 신예 소프라노 니노 마차이제(Nino Machaidze)가 스타 탄생을 예고한 공연이기도 했다. 그녀 뿐 아니라 남편 돈 제로니오(바리톤 Paolo Gavanelli), 따분한 정부 돈 나르치조(테너 Maxim Mironov), 그녀를 탐하는 터키 왕자(베이스-바리톤 Simone Alberghini), 왕자의 전 애인이었던 집시 자이다(메조소프라노 Kate Lindsey)에 이르기까지, 여러 캐릭터가 천방지축으로 등장하는데 모두의 역이 고루 개발되고 고루 좋은 노래를 들려주는 것도 즐거웠다. 무엇보다 거의 슬랩스틱 코미디라 할만큼 온몸 개그로 스토리를 이끌어간 시인(바리톤 Thomas Allen)의 감초같은 역할이 요절복통할 만큼 재미있다. 오페라 좋아하는 분들은 꼬옥 보세요.

남은 공연 일시는 27일 오후 2시, 3월2일, 5일, 10일 오후 7시30분, 13일 오후 2시.

티켓 20-270달러. (213)972-8001 www.laopera.com
Dorothy Chandler Pavilion, 135 N. Grand Ave., LA, CA 90012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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