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스무 권의 철학’이라는 무거운 책과 함께 하고 있다. 제목만으로도 압박감을 충분히 여길 책을 말이다.
심심찮게 눈과 비가 오는지라 대기는 촉촉하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말라져서 공중분해 될 듯한 착각(?) 환상 중에 지낸다. 그래서 무거운 내용을 담은 책을 읽어야만 하는 형편이 된 것에 감사하고 있다. 책속에 자리한 고리타분하고 시큼한 내용이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은 나를 붙잡아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모든 이들의 습관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며 나도 이 시대를 주장하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알기에 힘을 기울이며 지낸다.
많은 생각이 대립되어 흐르는 세상에서 나의 의견을 내기 위해서는 ‘그러나’의 뜻을 담은 반의가 등장하게 되어 있다. 요즘 세상 똑똑한 사람이 참으로 많다.
이 똑똑한 것은 지식으로만 채워져 있고 지혜는 모자란 듯하다. 그래서 무식한 할머니는 해결하는데 박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해결을 못하는 것을 종종 본다. 요즘 우리는 지혜 아닌 지식을 너무 추구하며 지낸다.
물론 지혜에서 파생되는 것은 앎이요, 지식에서 파생되는 것도 앎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현대생활을 견디기 위해서 지식이나 지혜란 절대적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백지상태로 비어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 또 기독교에서도 비우기를 가르치고 있다.
나는 여기서 기독교의 ‘비움’에 관하여 생각하려 한다. 무(無), 모든 것을 비운 후 은혜를 채워 넣는 기독교를 말이다. 물론 내가 믿고 따르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나와 너만의 자리가 아닌 데서는 종교 이야기를 선뜻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하면 지탄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 이야기가 아닌, 나의 생각을 나타내려 한다. 미움을 누르고, 질시하지 말고, 분노를 자제하며 모든 안 좋은 것들을 버려 마음을 비우고 희망과 기쁨을 그 자리에 채워 넣으면서 살아보자고 말이다.
머리가 아닌 마음이 세상 오욕으로 가득차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내는 이 세상 살만한 곳으로 변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