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밥에 울고, 밥에 웃고

2011-02-1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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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창구 워싱턴 사사세 회원

밥, 평소에 그렇게 심오하게 생각해 보는 단어가 아니다.
생활의 일부이고, 몸에 붙어 있는 말이거니 싶으니까 대부분 그러려니 하고 지나간다.
어느 날 원양상선 기관사를 하는 선배가 ‘밥’에 대한 의미있는 한마디를 하는 걸 듣고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간사 투쟁의 발단에는 ‘밥’ 문제와 연관 없는 게 없단다.
남자들만 스물서너 명이서 보통 1달이 넘게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각기 하는 일은 다를지라도 같은 공간에서 먹고 일하고 자는 것만 되풀이 하게 되는데, 먹을 때에 있어서 누군 많이, 누구는 고기의 맛있는 부위, 어디에 앉아서 먹는 것 등 사소한 것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 그만이지만 모두의 직관이 같을 수 없듯이 살만큼 살았다고 하는 사람들인데도 시비가 붙는다는 것이다.
크게는 나라 간의 전쟁이나 사소한 개인 간의 시비도 그 시작과 내용에서 ‘밥’이라고 하는 매개물이 반드시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땐 대개 ‘돈과 여자’를 적용하는 사례가 보다 일반적인데 그말을 듣고 나서부터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흔히 ‘밥그릇 싸움한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 ‘밥값을 해라’ 하는가 하면 ‘밥 먹고 할 일 없으면 잠이나 자라’는 등 열거하기조차 벅차다.
인심 중에 으뜸은 먹는 인심이라. “밥나고 인심난다”고 했다. 나누어 먹는 풍습과 인심이야말로 미풍양속이기 이전에 공동체 생활의 바탕이기도 하다.
이런 게 없다고 가정했을 때에 어떤 현상이 도래할까는 여지를 두고 생각해 볼 것도 없다.
먹을 밥이 충분한 사람들은 이제 그 격을 높이기 위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길거리에서 얻어먹는 것과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매일 이 밥이라는 걸 먹는 경우까지 수십 가지의 계층을 각기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놈의 국격은 뭐고, 물 막아서 잔디 깔고 배 띄우는 일 자체도 자연의 슬기를 거스르는 일이거늘, 가난하고 병들고 늙고 외로운 자들에게 밥이라도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게 하자는데, ‘밥 타령하는 놈 맨 날 도와줘 봐야 평생 그 팔자더라’는 등 인격적인 모독은 예사다. 오히려 도와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묘한 미소를 보내는 그들, 그들 역시 여차하면 오십보백보인 게 한국사회, 도대체 해결의 통로가 막연하다.
서러운 것 중에서도 배고픈 설움이 가장 비참하다는데,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어린이들에게 돌아 갈 결식아동 급식 지원비(4억3천만원)까지 전액 삭감해서 국민의 세금을 날치기로 통과시켜 놓고도 입은 좋아 공정사회요, 서민에게 다가 간다고 한다. 제발 좀 오지 말고 밥그릇이나 빼앗지 말지어다.
보다 못해서, 해외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까만 모금을 해서 보내기로 했다. 작다고 움츠릴 이유도 없고, 모두 어려운 형편에 힘닿는 대로 모아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바라옵건대, 자라나거든 먹는 밥 가지고 추접스럽게 만드는 이런 사회 안 보도록 같이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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