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 별거 아니야

2011-02-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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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을 생각하다가 정말 어느 날 갑자기 휑하니 이곳에 내려 앉았다. 물론 어려움이 물밀 듯 들어 올 때면, 정말 무모했구나 느낄 때도 있다. 아이들에게 좀 더 커다란 세상에서 조금은 다른 교육을 시키고픈 욕심으로 이곳에 왔지만 이곳에서도 더 나은 교육과 다양한 경험에는 돈의 한계에 다다르곤 한다. 하지만 그런 한계 속에서도 아이들을 향한 나의 소망은 내려 놓아 본적이 없다.

어느 날 한 마리의 강아지가 주인을 찾고 있으며 찾지 못할 때는 셸터로 보내져서 앞으로의 일을 알 수 없다는 사연을 인터넷에서 접했다. 마치 내가 금방이라도 데리고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에 밤늦게 온 가족이 그 강아지를 맞으러 나갔다. 지저분하던 강아지가 우리들의 손질로 아주 다른 모습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뿌듯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정서를 심고자 하는 나의 욕심은 남편의 반대를 앞서 나갔다.

중성화 수술도 하고 접종도 하고 대충 큰 돈의 고비는 넘겼다. 그러면서 강아지를 덥석 데리고 온 나의 또 다른 무모함에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한 고비를 넘고 나니 시에 강아지를 등록을 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매년 돈도 내야 한다는 말에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아이들 과외도 제대로 한번 못 시키는데 매년 내야 할 돈에 강아지가 앞으로 몇 년을 살 수 있을 것인가곱셈을 하기에 내 머리는 복잡했다.

그리고 의견수렴 절차를 생략한 채 단호하게 독단적으로 선포했다. “엄마가 너무 성급했던 거 같은데, 우리 사정에 개를 키우는 것은 조금 무리인 것 같아. 하지만 좋은 주인을 찾도록 노력할게. 미안해.” 아무 말 하지 않던 남편은 다음날 아침 회사에 출근한 후 전화를 했다.”여보, 아이들 정서와 사랑을 알게 한다던 당신의 삶의 방침은 어디로 가고 돈 몇 푼에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게 옳다고 생각해?” 이성적인 질문에 내가 코너에 몰리면 정답은 한가지이다. 그저 내 감정만 쏟아 붓는 것. “아이 몰라! 내가 이렇게 돈이 드는 줄 알았어야지.”


갑자기 더운 날씨로 지친 것인지 두 아들이 힘없고 슬픈 모습으로 학교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온다. 집에 와서 가방을 던져 놓고는 무엇을 하는지 난데없이 집이 조용하다. 잠시 후 두 아들이 내려와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준다.

“엄마, 우리가 그 동안 모은 용돈이야. 이걸로 돈 내고 내년에도 우리가 또 모을게. 우리 가족인데 어떻게 남에게 줄 수가 있어? 그렇게 되면 우리 강아지는 벌써 4번째 주인에게로 가는 거잖아.” 아이들의 눈에는 금새라도 툭 하고 떨어질 눈물로 가득하다. 두 아들의 작은 손에 뭉쳐 있는 1달러 뭉치의 돈을 보니 목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콱 하고 앞을 막는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모았던 용돈인지는 모르지만 얼마나 열심히 아끼고 노력해서 모았었던 것인지는 아주 잘 알기에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 엄마 생각이 짧았어. 미안해.” 강아지가 발단이었지만 이런 게 살아있는 것이고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어 눈물이 흘러 나왔다.

어렵고 빠듯한 가운데 나눌 줄 알고 살아 숨쉬는 모든 것에 귀 기울일 줄 아는 10살, 8살 두 아들로 인해 벅차도록 행복하다. 행복이 별것인가! 이런 것이 행복이지, 그것도 아주 커다란.


이경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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