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의 ‘자가 면역질환’

2011-01-29 (토) 12:00:00
크게 작게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여러 목표를 향해 힘껏 달리고 있다. 열심히 달릴 때 기분 좋은 일도 많이 일어나지만 반면에 많은 스트레스와 걱정들이 우리를 넘어지게도 하고 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에 20대 중반의 마이클(가명)이 중환자실로 입원되었다. 가벼운 감기증세는 있었지만 별다른 질병이 없던 건강한 남성이었다. 뚜렷한 병력이 없는 이 젊은 환자는 급작스럽게 다리에 마비증상이 오더니 몸의 윗부분으로 마비가 확산되었다. 며칠 사이에 호흡하기조차 힘들어져 인공호흡기를 연결해야만 되었다.

산소호흡기에 매달려 눈만 껌벅거리는 이 환자 앞에서 많은 의사들이 원인을 찾느라 분주했다. 뇌질환, 목 디스크 혹은 마비를 일으키는 신경내과 질환이 아닌가 의심하면서 여러 가지 혈액검사, 각종 방사선 검사, 뇌신경 검사, 척수 검사 후 찾아낸 병명은 ‘길리안 바레 증후군’이었다.

이 병은 뇌질환이나 디스크와 같이 원인이 외부에서 오는 병이 아닌 자가 면역질환이다. 자가 면역질환이란 자신의 몸을 보호해 주어야 할 몸 안의 면역체계가 자기 신체의 일부를 외부 침입자로 잘못 인식하고 이를 공격하여 생기는 질병이다. 길리안 바레 증후군은 말초신경이 자신의 면역체계로 인해 파괴되어 전신의 말초신경에 마비가 일어나는 병이다.


치료를 위해 면역억제 치료나 면역에 도움을 주는 주사를 놓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치료는 혈장 교환술이었다. 환자 자신의 신경을 공격하고 있는 항체는 피의 액체 부분인 혈장에 있다. 특수장치로 혈액을 빠른 속도로 돌려주면 혈장과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의 세포들을 분리시킬 수 있다. 세포들로부터 분리된 환자의 혈장을 뽑아내고 그와 비슷한 수액을 넣어주는 이 치료를 하루 이틀에 한 번씩 여러 차례 했다.

나쁜 항체를 뽑아내자 서서히 환자 상태가 좋아졌다. 마이클의 근육은 많이 약해져 있었지만 마침내 인공호흡기를 떼어버릴 수가 있었다. 그는 평생에 이렇게 힘든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마음의 괴로움도 외부의 실제적인 어려움보다는 ‘자가 면역질환’과 같이 내부적인 원인일 때가 많다. 시샘, 질투, 성공과 사랑에 대한 집착, 열등감, 우월감, 거들먹거림, 오해로 오는 분노, 실패에 대한 두려움….

우리는 매일 승리를 향해 달린다. 그러는 중에 잡다한 내부적 파괴자들이 바싹 따라 붙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종종 마비시키며 괴롭힌다. 이 끈덕진 놈들을 어떻게 분리시켜 따돌릴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것이 ‘감사’라는 원심 분리기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편치 않을 때 새털처럼 많은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들이 모여 오늘을 만든 것을 생각하며 감사해 본다.

마음이 공허해 질 때 고마운 분들을 찾아뵙고 단 몇 분이라도 따뜻하게 감사할 수 있다면 나의 삶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삶에도 기쁨이 더해지리라.

길리안 바레 증후군에 걸렸던 마이클의 상태는 계속 호전되었고 재활병원에서 완전히 회복되었다. 별로 넉넉해 보이지 않는 행색의 마이클 어머님이 나를 찾아와 몇 번이나 고맙다고 허리를 구부려 인사를 했다. 환자를 돌보느라 쌓였던 긴장과 피곤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내 속에 은근히 싹트고 있던 지불되지 않은 진료비에 대한 불만도 사그라졌다. 마이클은 무보험자였다.

그 순간 문득, 내가 무보험자였을 때 맹장수술을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말을 충분히 전하지 못한 것이 후회로 떠올랐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왔던가?

내 마음 속의 감사와 마이클 어머님의 감사가 만나 빙글빙글 춤을 추니 내 마음속에 있던 불평과 짜증이 슬그머니 빠져 달아났다.


김홍식
내과의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