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학습환경·아이들 성격·개인차 고려해야”

2011-01-24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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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직한 조기 외국어교육 방향은…

“학습환경·아이들 성격·개인차 고려해야”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퍼파워로 떠오르면서 미국에서 불어, 독어, 일본어가 쇠퇴하고 중국어 교육이 각광을 받고 있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외국어 조기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한때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 학생들이 외국어를 처음 접하던 것이 이제는 학령도 되기 전인 3~4세 유아들이 모국어와 함께 최소한 한 개의 외국어를 배우는 게 흔한 풍경이 돼 버렸다.

학계에서도,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조기 외국어 교육은 뜨거운 논란거리다. 요즘 같은 시대에 외국어 교육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이 사는 국가만이 아닌 전 세계가 하나의 무대이며 이로 인해 외국어 하나쯤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다만 외국어를 ‘언제’ 가르쳐야 하는지가 뜨거운 쟁점으로 남아 있다. 조기 외국어 교육의 명암을 진단해 본다.

5세 이전 시작 언어습득 능력 극대화
나이보다 목표언어 몰입여부가 중요
선택은 자유… 얻는 것과 잃는 것 비교를


■ 사례

발렌시아에 거주하는 최모(35)씨는 유치원생 딸(5)을 두고 있다. 최씨는 아이가 4세 때부터 토요일에 3시간씩 샌퍼난도 밸리에 있는 중국어 학원에 보내고 있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군사적·경제적 수퍼파워로 성장한 중국의 언어와 문화를 알아두면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최씨의 딸은 기본적인 인사말과 함께 1부터 100까지 중국어로 셀 수 있으며 클 대(大), 물 수(水), 작을 소(小), 가운데 중(中) 등 다양한 기초한자 정도는 자유롭게 쓸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최씨는 “이제는 중국어가 대세”라며 “아이의 학원수업이 끝날 때까지 인터넷, 독서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일찍부터 시작한 게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조기 외국어 교육에 대한 열정을 과시했다.

세리토스에 사는 학부모 조모(40)씨는 최씨와 생각이 좀 다르다. 외국어 교육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빨리 배울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모국어(영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시기인 10세 이후에 외국어를 배워야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양을 소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조씨는 “지난 연말 친하게 지내는 학부모 4~5명이 한자리에 모여 조기 외국어 교육을 토픽으로 격론을 벌였는데 의견이 반반으로 갈렸다”며 “집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쓰는데 아이가 이른 나이에 외국어까지 배우면 영어 학습에 문제가 될 것 같고 정체성에도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게 나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 찬성


일반적으로 학령 전인 1~5세에 외국어 교육을 시키는 것을 조기 외국어 교육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외국어 교육을 시작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으며 훗날 원어민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 찬성론의 뼈대라고 할 수 있다. 일정 나이가 지나면 언어학습 능력이 감소하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시작할수록 더 빨리, 더 쉽게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태생의 세계적인 언어학자 놈 촘스키(Noam Chomsky) 박사를 비롯한 조기 외국어 교육 찬성론자들에 따르면 모든 어린이는 출생 때부터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데 이를 언어습득 장치(Language Acquisition Device·LAD)라고 한다.

이 LAD는 6세 이전에 가장 왕성한 작용을 하기 때문에 이 기간 배우고자 하는 언어 환경에 노출되기만 하면 몇 개의 언어라도 모국어처럼 구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춘기로 접어들면 LAD를 상실하기 때문에 외국어 교육은 LAD가 가장 왕성한 2~6세 때 시작해야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찬성론자들은 주장한다.

■ 반대

조기 외국어 교육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입장은 대체로 외국어는 배우는 ‘시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환경’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배우는 언어를 일상생활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할 바에야 일찍 시작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입장이다.

학교 또는 학원처럼 의식적이고 인위적인 환경 속에서 남보다 빨리 외국어를 배우는 것보다는 모국어 체계가 확실히 자리 잡은 뒤에 새 언어를 배우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교육 전문가인 윌셔 아카데미 알렉스 정 원장은 “발음 측면에서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단어 및 표현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조기 외국어 교육은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며 “아이가 최소한 3~4학년은 되어서 외국어 교육을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목표 언어에 완전히 몰입할 수 없는 환경에서 원어민 수준의 유창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반대론자들은 판단한다.

LA 한인타운 글로벌 앰배서더 초등학교 지나 김 교장은 “외국어 교육은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구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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