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해에 맞은 새 벗

2011-01-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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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생각

한국에서 70년대 말까지 상품선택의 여지가 없던 환경에서 자란 후 30대 중반 구미에서 생활하면서, 통증까지 느낄 정도의 애로사항 중 하나가 그 많은 동종 또는 유사 상품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 구입하는 일이었다. 세월이 흘러 현지생활에 익숙해지면 나아질 수도 있으련만, 30 성상이 흐른 오늘날에도 그 고충은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샤핑이 취미이며 스트레스 해소책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돈 버는 일이 샤핑하는 것보다 훨씬 용이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이런 진통 끝에 구입하다 보니 그것이 가옥처럼 부동산이 되었건, 차량 또는 기기처럼 동산이 되었건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 같이 ‘동행’하는 습성이 있다.

1997년 7월 하순에 구입한 볼보도 마찬가지다. 그 해 6월25일 생사를 가르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후, 한달만에 구입한 볼보 자동차가 지난 12월말 폭설이 내리던 크리스마스 다음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필자의 ‘발과 수레’가 된 지 13년 반, 삶의 1/7 이상의 시간을 같이 하고 떠난 것이다. 그 동안 주행거리를 Km로 환산하면 48만433 Km가 된다.
이는 지구를 12번 회전한 거리이며, 미 동부해안에서 서부해안까지 61번 왕복한 거리이며, 한반도를 남북으로 260번 횡단한 거리이다.

지난 13년 동안 충복으로 봉직하던 볼보가 폐차 처분되어 가는 장면은 주인의 마음을 찢어 놓고도 남았다. 마치 하나의 생명체와 생이별하는 심정이었다. 폐장장 주인아들이 분해 부품값으로 현금 200 달러와 차량 번호판을 건네주며 "뉴욕시의 정크 야드 이전계획에 따라, 60년 역사를 지닌 우리 폐차장도 곧 이전할 계획이다"며 그때 내 사업체에서 스티커, 키 체인 등 판촉물을 주문할 것이라고 했다.

볼보는 ‘죽어서도’ 주인을 봉양하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아려왔다. 현찰 200달러는 지갑 속 다른 지폐와 같이 넣을 수 없어 금고 한 구석에 고이 간직하여 놓았다.

그래서 새해 새 아침에 맞아들인 ‘새댁’이 현대 소나타다. 현대차의 품질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였을 뿐 아니라, 2010년 미국시장에서 70만대 이상 판매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이름 있다’는 차는 거의 다 소유하여 보았다. 유럽생활 할 때는 현지 BMW를,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 와서는 미국 차 포드, 셰비 한인들이 ‘죽고 못 사는’ 일제 토요타 캠리, 그리고 충돌사고 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차로 알려진 스웨덴 산 볼보 등.

그러나 이번에 구입한 현대 소나타는 다른 차들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BMW 300 시리즈보다, 볼보 S70보다 더 좋다. 동종 차량 중에서 가격경쟁력 면에서도 월등하다.

롱아일랜드 소재 현대 딜러의 세일즈맨이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 많은 승용차 생산업체가 있지만 제철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회사는 현대밖에 없다. 현대차 제작에 사용되는 철강은 다른 경쟁차량에 비하여 20% 더 강도가 높다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차문을 열 때 마다 기억난다.

"대한민국 대단한 나라가 되었구나" 실감하며 또 다시 ‘대 한국인 만세’를 불러 본다.


한태격
뉴욕 평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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