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세상에는 머슴은 없다. 그러나 머슴처럼 사는 분들이 있다. 머슴이란 주인을 섬기는 자다. 그러면 주인은 누구인가. 나 같은 가게 주인인가, 회사 사장인가, 사회 유력 인사인가.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어느 분은 근 20년 동안 볼티모어시의 가난한 주민들에게 음식이나 생필품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노인이 되신 몸을 이끌고 아파트를 오르내리며 그들을 섬기시다보면 허리도 아프신 모양이다. 한 끼를 먹이는 그 자체야 무엇이 큰 일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마치 정치인들이 선거유세를 하듯이 한두 번은 하겠지만 그 많은 세월이 가능하겠는가. 그 분은 머슴이 평생 주인을 섬기듯이 그들을 섬기는 것 같다. 어떤 마음을 가지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또 어떤 분은 추수감사절 즈음이면 지역 주민에게 자기 가게에서 무료로 음식을 제공한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은 그를 ‘Good man’으로 부른다고 한다. 그와 유사한 사례들이 주변에서 많이 들린다. 이 시대에 머슴이 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둡고 냉랭한 사회의 한 그림자가 그런 분들의 선행으로 인해 밝고 따뜻하게 만들어진다면 좋은 일이다.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솔직히 부끄럽다. 나는 나의 생활에서 조차 힘겨운 갈등 속에 빠질 때가 있다.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난 몇 개월 동안 남을 섬긴다는 이 ‘머슴의 도’에 관하여 심도 있게 배울 기회가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저 깊은 내공이 쌓인 분들의 신들메를 풀 수 있겠는가. 할 수 있는 대로 작은 일부터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온 지 5년 반이 지났다. 그동안 이민 1세가 겪어야 할 정신적 고통을 남 못지않게 체험했다. 미국 오기 전 40대 중반까지 경험했던 일들보다 이 기간에 겪은 체험의 강도가 훨씬 강했다. 그 중에서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일이 볼티모어시에서 가게를 처음 시작할 때였다. 십대 아이들의 욕지거리와 횡포, 음식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아우성, 돈을 냈다 안냈다, 거스름돈을 받았다 안 받았다 하는 끊임없는 실랑이, 음식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기 등등. 우스갯소리로 귀신들은 다 어디 간 거야 저 인간들 안 잡아가고 하며 그들을 멸시했었다. 밤늦게 돌아오는 차안에서 어떤 때는 나의 인생 후반기가 슬프게 느껴져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던 어느 시점에서 나의 마음이 치유되며 회복되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을 내려놓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이 대적이 아니라 나의 손님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짓궂었던 아이들도 점차 서로 익숙해지면서 가게의 분위기도 정돈되는 듯 했다. 현실적인 상황은 사실 크게 변한 것이 없을 수 있다. 어쩌면 현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변한 때문일 수도 있다.
이제는 손님들을 섬기는 마음으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가끔씩 열 받을 때도 있지만. 이세상은 끊임없는 비교의식으로 인해 늘 열등감과 우월감이 지배한다. 이세상은 서로를 평등하고 자유스러운 만남으로 놔두지 않는다. 모두가 주인이 되려 하고 으뜸이 되려 한다. 그래서 때로 누군가에 의해 마음이 찢어지고 그를 미워하여 우발적인 살인까지도 저지른다.
나의 자녀가 남들보다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탓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부모의 지나친 기대가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 이제 자녀들을 내려놓고 사랑과 격려만을 마음껏 해주자. 내가 속한 일터에서도 섬기듯이 일을 해간다면 어떨까. 어쩌면 나에게도 그렇게 섬기듯이 대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내가 조금 변한다고 해서 사회가 변하겠는가. 그러나 작은 소리가 모여 큰 울림이 될 수 있다. 이제 불황의 긴 터널 속에서 잔뜩 움츠려진 어깨를 새롭게 펴자. 그리고 눈을 들어 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자. 나도 머슴의 도를 실천하는 그중의 한 작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