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TV를 한 대 사러 갔다. 사실 필자의 아버님 댁에 디지털 TV가 없었다. 그 동안 작은 사이즈의 아날로그 TV를 케이블 채널로 주로 한국방송을 보시는 데에만 사용했는데 화면 사이즈도 작고, 오래된 TV라 화질도 별로 좋지 못했다. 연세가 드시면서 시력도 점점 안 좋아지시는 부모님들이 보시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언제부터인가 디지털 TV에 대해 말씀하시곤 하셨지만 실제로 사시는 데에는 많이 주저하시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여러해 전에 은퇴하신 후 직장 은퇴연금과 사회보장제도연금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시는데, 두 분이 생활하시기에 부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여유롭게 돈을 쓰시진 않으셨다. 물론 평생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인 분들이시라 웬만해서는 크다 싶은 지출을 안 하시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필자의 두 애들이 대학으로 돌아갈 때면 항상 적잖은 액수의 용돈을 챙겨주셨다. 또 크리스마스, 설, 그리고 생일을 맞을 때마다 봉투를 건네주시곤 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와 설날에도 예전과 다름없이 선물과 세뱃돈으로 현금을 챙겨주셨는데 그 돈이면 웬만한 디지털 TV 한 대 사는 데에는 전혀 문제없는 액수였다.
생각해보니 아들이 된 필자가 그 동안 부모님 보시는 TV 하나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음이 몹시 죄송스러웠다. 바로 달려가 아버님 댁의 TV가 놓여 있는 곳에 딱 맞을만한 규격의 TV를 한대 주문했다. 그런데 가전제품이나 컴퓨터를 구입할 때 항상 있는 일이 세일즈맨의 애프터 서비스플랜 세일즈이다. 대부분 이러한 플랜구입을 거절하는 필자로서는 이번에도 구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세일즈맨은 여러 차례 계속해서 이러한 플랜의 여러 가지 혜택에 대해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이었다. 두어 번 정중하게 거절한 후 실제로 TV 매입 비용을 치루기 위해 크레딧 카드로 결제하려고 하는데 세일즈맨이 또 다시 애프터 서비스플랜 구입을 고려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플랜에 대한 설명을 하려는 것이었다. 이 때 필자의 입에서 불쑥 나온 반응이 “Would you let me go?” 즉 “이제 그만 보내주시지 않겠습니까?”였다. 물론 말투도 퉁명스러웠고 누가 보아도 불쾌한 마음 상태를 알아 볼 수 있는 표정도 지었을 것이다.
TV 구입을 다 마치고 나오는 길에 대학에 다니는 둘째 아들 녀석이 핀잔을 주었다. 꼭 그렇게 했어야 했느냐는 것이다. 그 세일즈맨은 어쩌면 마지막 결제과정 전에 꼭 다시 한 번 그렇게 고객의 의사를 확인하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 업무상 책무가 있었을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듣기 싫더라도 그냥 가만히 한 30초 정도만 좀 더 들어준 후에 거절했어도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젊은 세일즈맨은 하루에도 상당히 많은 고객을 상대해야 하고, 사실 본인도 싫지만 할 수 없이 그렇게 애프터 서비스플랜을 팔아야만 하는 상황일지도 모르는데, 상대하는 고객들이 모두 필자같은 반응을 보인다면 얼마나 힘들겠느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금방 얼굴이 화끈거렸다. 분명히 맞는 얘기였던 것이다. 기왕 참았던 것 조금만 더 참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당장 찾아왔다. 사실 이제 그러한 것 쯤 여유 있게 받아줄 수 있는 나이도 되었건만 아직도 순간적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반응을 보이는 것은 나이를 헛먹고 있다는 뜻이리라.
새해 벽두부터 실수였다. 물론 이외의 다른 실수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기분이 언짢아 반응을 보여야 할 상황에서는 적어도 한 15초 정도는 생각해 보고 입을 여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15초가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다. 그런데 15초를 아끼려다 이웃에게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스스로 평생 열심히 일해 온 것을 송두리째 허무는 큰 실수로 연결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없던 빚도 생겨 날 수 있다. 물론 말 뿐만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특히 감정이 격해 있는 상황일수록 더욱 그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행동을 하기 전에 그러한 행동 뒤에 따라 올 수 있는 결과를 한 번 쯤은 생각해 보는 마음의 여유를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 나잇값 제대로 한다는 얘기를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심 부끄러웠지만 아빠의 잘못을 주저 없이 지적해 준 둘째가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