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함께 눈이 펑펑 쏟아지는 고속도로는 퇴근길 차들로 꽉 차 있었다. 15분이나 늦어 허둥지둥 집안으로 들어가니, 아기와 놀던 비앙카가 반갑게 맞았다. 나와 함께 아기와 좀 더 놀던 그녀는, 자기는 저녁 강의하러 금방 나간 안톤과 먼저 먹었으니 나 혼자 먹으라며 부엌으로 갔다.
음식이 든 큰 냄비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남의 저녁상을 차릴 정도이면서 도움을 청하다니. 별 도울 일도 없는데 30분 이상 운전하고 와 남의 집에서 혼자 밥을 먹으려니, 퇴근 후 집에서 혼자 찬 음식 데워 먹을 남편 생각이 나 맥이 빠졌다. 이렇게 있다가 안톤이 온 후 늦게 집에 가서 잠깐 눈 부치고 아침 강의하러 새벽 일찍 집 나설 생각을 하니 슬그머니 약이 올랐다.
안톤과 비앙카는 30대 부부교수다. 우리 부부의 학교 후배여서 가깝게 지내던 안톤은 3년 전 비앙카와 결혼했고 지난여름 예쁜 여아를 낳았다. 루마니아에서 비앙카 친정부모가 와서 6개월 동안 아기를 봐주다가 지난 12월에 떠났는데, 그들은 그 후부터 아기 뒷바라지에 정신을 못 차렸다. 둘 다 거의 집에만 있고 강의시간에만 출근했다. 비앙카가 기운이 없어 혼자는 아기를 못 본다 하여, 안톤이 강의하러 갈 때 마다 친구들이 순서를 정해 그 집으로 갔다. 베이비시터를 구하면 좋을 텐데.
그들은 실은 아기를 낳기 전부터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안톤이 학회로 출장을 가면 비앙카는 봇짐을 싸들고 우리들 집에서 돌아가며 잤다. 아니면 우리 중 하나가 비앙카 네에 가서 함께 잤다. 어릴 적에 부모 곁을 떠나 본 적이 없던 비앙카는 아직까지 밤에 혼자 자는 것을 끔찍해 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별스럽지만 딱하단 생각으로, 각자 바빠도 불평 없이 돌아가며 비앙카의 ‘베이비시터’가 되어주었다.
비앙카의 부모는 무남독녀인 비앙카를 어느 공주보다 더 받들었다. 그래서 현재의 비앙카는 착하긴 해도 거의 병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공부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 우리가 보기엔 사람 좋은 안톤을 만나 별 문제없는 결혼생활을 하는 것 같다.
친정부모 출국 직후, 와 달라고 해서 갔을 때였다. 강의하러 나가려던 안톤이 비앙카가 목욕하는 잠깐 동안 고민을 털어놨다. 친정부모가 비앙카는 아기 보는 일에 절대 손대지 못하게 했고 비앙카도 할 생각을 안 해서, 엄마로서 일을 배워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가 비정상인 취급을 받게 되었다 한다.
비앙카는 친정부모가 떠난 날부터 아기 키울 걱정 때문에 잠을 못 자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쇠약해졌다. 친정부모가 하루 종일 안아 주었던 아기는 안아 주지 않으면 마구 울었다. 친정부모가 아기를 전혀 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비앙카는 아기가 울면 초긴장 했다.
아기를 바람 옆에 두면 안 되니 히터 근처를 피하라 했기 때문에, 안톤이 잠깐 잊고 아기를 히터 옆에 앉혔을 땐, 내가 있는데도 눈을 부라리며 삿대질을 했다. 비앙카가 쉬도록 밤에는 아기와 딴방에서 잔다는 안톤의 얼굴도 잠깐 사이 너무 수척해졌다.
비앙카는 결국 이번 학기에 휴직계를 내고 며칠 후 아기와 친정에 간다. 혼자는 못 가서 안톤이 주말에 데려다 주고 온단다. 여름에 친정엄마와 함께 돌아오고, 엄마의 비자가 끝나는 겨울엔 살림꾼인 친정아버지가 와서 그 다음 6개월을 도와준단다. 그래서 베이비시터 구할 필요가 없단다. 친구들의 걱정은,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비앙카의 직장은 물론 안톤의 직장까지도 염려된다. 아예 루마니아로 이사하는 것은 아닌지.
아들이 이제 대학생인데 난 벌써부터 부모 사랑을 지나치게 받은 며느리를 얻을까봐 걱정하고 있다.
김보경
대학 강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