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최계영

2011-01-10 (월) 12:00:00
크게 작게

▶ 어머님의 정성(1)

대학 입학하러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여름방학까지 입을 옷 보따리를 다 챙기고 아랫목에 펴놓은 이불속에 다리를 펴고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딸 시집이라도 보내는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지며 몸조심하고 공부 열심히 하라시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 어머니 마음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나는 뚱딴지같이 대학 졸업 후 미국유학 갈 테니 결혼준비 같은 것 하지 말라고 뚱딴지같은 소리를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무슨 망령된 소리냐고 질색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옳지, 미국 가서 박사학위 받고 귀국하여 대학교 교수되면 좋지”라고 하시며 기뻐하셨다.
어머니는 기어코 눈물을 흘리시며 “딸 하나 두어 서울 보내는 것도 이렇게 서운한데 당치도 않은 미국이냐”고 하시며 절대 그런 생각은 당치도 않다 하셨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럼같이 미국 가서 딸하고 살면 될 거 아니냐고 핀잔을 주셨다.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다 보면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다. 강릉의 내방 붙박이 장속에는 아름드리 장래항아리가 있었다. 어머니는 내 어렸을 때부터 시집가면 준다고 비단 옷감이며, 이불, 요감과 도포 베를 항아리 속에 차곡차곡 장만해 두었다. 손으로 판 함지박도 크기대로 세 개나 준비하여 몇 년에 한 번씩 새로 옻칠을 하여 반질반질하게 간수해 두었다. 도포 베도 가끔 꺼내 다시 손질해 두어 베틀에 짠 노란 베가 귀하게 보였다. 그러나 정작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정성들여 장만해 놓은 장래 항아리에 무관심 했었다.

어머니는 내가 대학을 졸업한 후 2년이 지난 후 돌아가셨다. 그렇게 딸 시집보낼 준비를 오랫동안 했었는데 출가도 못시키고 가셨던 것이었다. 그 후 나는 약혼후 오랫동안 기대했던 미국유학을 가게 되었다. 미국을 가려고 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고 어머니 생각이 나 처음으로 장래 항아리를 열어보았다. 어머니가 정성들여 장만해 놓았던 그 많은 비단옷감들은 그러나 유행이 지나 구식이 되었고 이불과 요감은 열채씩이나 준비를 해 놓으셨다. 그것을 보고 나는 어머니의 정성에 놀라고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어머니 정성이 아까워 이불과 요 각 두 채씩 꾸며 시부모될 분들께 드리고 이불감 두필을 미국에 갖고 갈 가방 속에 넣었다. 미국에 온 후에 담요로 속을 넣고 비단이불감과 침대시트로 한국이불 비슷하게 만들어 가신 어머니 정성을 느끼며 침대보로 썼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