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반도의 라인란트

2010-12-2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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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대전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1939년 9월 1일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부터다.

그러나 역사학자 가운데는 이 전쟁의 시작을 1936년 3월 7일로 잡는 사람도 있다. 독일군은 이날 자전거를 타고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비무장 지대로 선포된 독일 서쪽 프랑스 접경지대 라인란트로 진군했다.

당시 독일 병력은 프랑스나 영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취약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히틀러도 “프랑스 군의 저지가 있을 경우 즉각 퇴각하라”고 명령을 내렸을 정도다. 그러나 당시 선거를 앞두고 있던 프랑스 정부는 이를 저지하려다 말썽이 일어날 경우 여론의 지탄을 받는 것을 두려워 해 이를 방관했다. 수 년 후 프랑스 공격의 발판이 된 라인란트는 이렇게 쉽게 독일 땅이 되고 말았다.


2년 뒤 똑같은 일이 이번에는 독일 남쪽 주데텐 지역에서 일어났다. 그 해 3월 ‘평화적으로’ 오스트리아와 합병한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 영토인 이곳에 많은 독일인이 살고 있으며 이들이 박해를 당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를 양도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당연히 체코는 이에 반발했으나 국내 반전 여론에 겁먹은 영국과 프랑스의 지도자들은 체코를 압박, 독일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땅을 내줄 것을 종용했고 힘없는 체코는 울면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수상은 뮌헨에서 히틀러와 회담을 갖고 이 지역 양도 협정에 서명한 후 “이것이야말로 금세기 평화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외쳤다.

주데텐 지역만 갖겠다던 독일은 이 지역을 무장 해제시킨 후 바로 체코 전역을 집어삼켰다. 중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갖고 있고 험한 산악 지대마다 요새를 구축해뒀던 체코는 이렇게 독일 손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누워서 땅 뺏는데 이골이 난 독일은 다음해 ‘폴란드 회랑’을 가지고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폴란드 회랑’이란 폴란드가 바다로 나가는 길을 터주기 위해 폴란드 영토로 인정해 준 동 프러시아와 독일 사이의 지역을 말한다. 독일은 이 지역 독일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다며 이 곳 영토의 반환을 요구했다. 작년 주데텐에서 재미 본 수법을 그대로 써먹은 것이다.

겁 많고 둔한 영국과 프랑스의 지도자들도 히틀러의 야심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고 폴란드를 침공할 경우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통보했지만 이들을 우습게보기 시작한 지 오래된 히틀러는 웃으며 폴란드를 쳐들어갔다. 이것이 인류 최대 재앙 제2차 대전의 시작이다.

1936년 그날 자전거 타고 쳐들어온 몇 명의 독일군을 누군가 막기만 했었다면 이들은 히틀러 명령대로 즉시 머리를 돌려 귀환했을 것이고 그렇게 됐더라면 이웃나라를 침략하려다 개망신 당한 히틀러는 실각하고 2차 대전이란 대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60여년전 라인란트에서 벌어졌던 일이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히틀러 자전거 부대와 똑같은 수법이다. 상대방의 결전의지를 떠보겠다는 것이다.


적의 공격과 엄포에 벌벌 떠는 나라는 이미 싸움을 해보기 전에 진 것이나 다름없다. 상대방이 꿇으라면 꿇고 빌라면 빌고 달라면 주는 국가는 이미 존재 이유를 상실한 나라, 나라이기를 포기한 나라다. 역사와 현실은 그런 나라를 살려둘 만큼 한가하지 않다.

지난번 한미 군사 훈련 때와 지난 주말 연평도 훈련 때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던 북한군은 죽은 쥐처럼 조용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울이 불바다가 되면 평양은 묵사발이 된다는 것을 북한의 생쥐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생쥐가 원하는 것은 치즈 조각이지 묵사발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조국의 땅을 지킨다는 각오만이 나라를 구하는 최선이자 유일한 수단임을 명심하자.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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