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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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 성탄의 장식등

2010-12-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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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가 가까워 오면 내 머릿속은 한국의 명동거리로 가득해진다. 대학생이 되어서 선배들과 어울려서야 겨우 갈 수 있었으니 두어 번이나 가 봤을까? 하지만 눈이 내리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젊은 연인들과 성당의 고딕빌딩에서 울려 퍼지는 고즈넉한 종소리가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밝힌 상점에서 커다랗게 틀어놓은 캐롤보다 더 깊이 귀를 파고들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그런 추운 겨울 밤풍경이 생각난다.

성탄절과 새해맞이가 가족중심으로 조용한 미국에서는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로 바뀌는 길목이라는 사회적 흥분이 한국보다는 덜하기도 하고 특히 겨울 같지 않은 포근한 날씨의 캘리포니아에서는 흥도 쉽게 나질 않는다. 더군다나 우리 동네에는 일 년 내내 가로수를 장식등으로 감아놓아 그저 그날이 그날 같은 느낌이다.

물론 12월이 다가오면 동네에 좀 더 장식등도 많아지고 산타 할아버지며 캔디캐인, 종, 그리고 사슴과 더 많은 크리스마스트리를 내다 세우는 바람에 뭔가 선물을 주고받아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띄워지기는 한다.


나는 12월이 일 년 중에 제일 좋다. 짧지만 겨울방학이니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도 좋고 서로 챙기려고 하는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난 일 년 열두 달이 늘 12월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아서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올해도 기다리던 12월이 어김없이 다가왔다. 작년에는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12월이 지나갔기에 올해는 날짜가 지나가는 것을 하루하루 기억하며 지난 추수감사절부터 매 순간을 느끼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진짜 행복하다.

근데 참 이상한 것이 있다. 일 년 가로수를 칭칭 감고 있던 희끄무레 하고 지루해 보이던 장식등의 불빛이 점점 아름답게 바뀌어가는 것이다. 설마 새로 바꾸진 않았을 텐데 쌀쌀해진 캘리포니아의 겨울 날씨와 함께 빛이 더욱 맑고 밝아지는 것이 눈에 신선해 보인다.

낮에 봤을 때도 그리 돋보이는 장식등은 아니었다. 한해의 마지막 달로 기록된 12라는 숫자의 놀음에 의한 정신적인 것도 아니고 기온의 차이에서만 느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면 가로등들도 그렇다. 가끔 어느 정신없는 공무원의 실책 때문일까 밤이 오기 전에 두 눈을 밝힌 가로등은 아무리 같은 힘을 내도 해가 있을 때는 희미해 보이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부터 힘을 받기 시작해 깊은 밤이 되어야 가장 그 빛이 밝고 고마운 생각이 절로 들게 되는 것이다.

성탄의 장식등들은 12월의 찬바람이 불어야 힘이 나기 시작하고 12월이 깊어질수록 탄력을 받다가 그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밤이 되어야 그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이 가슴을 설레게까지 하는 것이 신기하다. 그러고 보면 찬바람이나 어두움이 나쁜 것만은 아닌가 보다 그 어둡고 척박한 환경이야 말로 장식등의 진짜 아름다움을 발휘하게 만드니 말이다.

삶이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장애를 가진 학생도, 비장애 학생도 그런 희망을 볼 수 있는 능력으로 삶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많은 경험을 하되 성공의 기회만큼이나 실패의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너무 과보호를 하여 실패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만큼 자녀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능력을 키우는데 장애가 되는 것도 없다.

실패가 찾아오지 않도록 어린 자녀의 방패막이가 되기보다는 실패를 했을 때 옆에서 격려해 주고 스스로 일어서서 바른 길을 찾아가는 길목에 동행인이 되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장애아동들은 잦은 실패로 인해 두려움을 갖게 되고 이겨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실패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바로 작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 이겨내는 희망을 배우게 될 때 얻게 되는 것이다.
실패의 어두움이 잠재력이란 장식등의 진가를 밝히는 기회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기쁘고 복된 성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효선 <칼스테이트 LA특수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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