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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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과 신뢰

2010-12-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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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생각하며

지난 추수감사절 방학에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둘째가 다녀갔다. 세 달 만에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 앉아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앞으로 갈수록 모든 식구가 모일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다지 반갑지 않은 현실이다.

학교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그 주 일요일 오전 7시 출발하는 것으로 끊었단다. 비행기 출발 한 시간 반 정도 전에 공항에 도착하기 위해 집에서 4시 반에 나와야 했다. 덕분에 한밤중에 일어나 준비하고 공항에 다녀왔다. 그래도 둘째 애와 공항까지 단 둘이서 한 시간가량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둘째 애와 공항까지 가면서 나누던 이런저런 대화들은 학생들의 정직성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둘째 애가 다니는 대학에서도 제법 많은 학생들이 시험이나 과제 제출에서 정직하지 않은 행위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한인 학생들도 꽤 있다는 얘기였다. 과제를 서로 베끼는 것은 예사이고, 시험을 치를 때에도 서로 답안지를 보여주거나 훔쳐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속칭 ‘족보’라고 불리는 선배들로부터 내려오는 시험문제 모음집이 존재하는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 사이에 시험 전에 그러한 문제 모음집을 끼리끼리만 나누어보고 준비하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이해해 줄 수 있다고 쳐도, 선배들이 과거에 이미 제출했던 페이퍼를 베껴 쓰는 행위는 명백한 부정행위 아니냐는 탄식도 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비슷한 부정행위는 비단 대학에서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이미 여러 해 전에 애들로부터 들은 바가 있었다. 선생님들이 내주는 시험 중에 집에서 풀어오는 것들이 가끔 있는데, 교과서나 노트를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시험일 경우에도 교과서나 노트를 뒤져 보는 유혹에 굴복하는 학생들이 제법 많다고 했다.

이러한 부정행위의 배경에는 부모들의 학교 성적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집착이 아이들에게 큰 압박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추측을 해본다.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지난 10월 말에 한국에서 참여했던 학회의 한 세션에서 있었던 질의응답 시간이 생각났다. 한 선생님은 한국에서는 학생들의 성적에 영향을 주는 평가방법에 조금이라도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방법은 받아들여지지 않아 대입 시스템을 바꾸기 어렵다고 말했다.

객관식 문제를 통한 평가 외의 다른 방법, 즉 미국식의 추천서, 에세이, 특별활동, 그리고 인터뷰들을 참고하는 대학 입학사정 방식을 부분적으로 실시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런 사정방식의 평가 결과에 대해 서로를 신뢰할 수 없기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직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가 그 고통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사실 정직성의 문제는 인종적이나 국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한인이나
아시아계든 아니면 백인이나 흑인이든 간에 상관없이 정직성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품성과 인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좋은 성적을 받아야 된다는 강박감 아래 우리 자녀들이 살아간다면 그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우리 부모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부정한 행위로 당장 좋은 성적을 받는다는 것이 그 학생에게 장기적으로 보아서 독이 된다는 것을 부모들이 먼저 깨달아야 한다.

사실 어느 부모도 자식들에게 부정한 행위를 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을 우리가 조성하고 있지는 않는지, 또한 우리 부모의 행위에서 혹시 부정을 배우는 것은 없는지 한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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