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2010-12-09 (목) 12:00:00
아직 밖은 매운 바람일 때
하늘의 창을 열고
흰 불꽃을 터뜨리는
목련의 한 획,
또는
봄밤을 밝혀 지새우고는
그 쏟아낸 혈흔(血痕)을 지워가는
벚꽃의 산화(散華),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드는
단풍으로 알몸을 태우는
설악(雪嶽)의 물소리,
오오 꺾어 봤으면
그것들처럼 한 번
짐승스럽게 꺾어 봤으면
이 무딘 사랑의
붓대.
이근배(1940 - ) ‘절필(絶筆)’ 전문
절필은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다. 글다운 글 한 줄 제대로 써본 적 없는 작가는 새삼 절필한다고 말할 자격도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매운 바람 속에서 흰 불꽃을 태우는 목련이나, 봄밤을 밝히고 산화하는 벚꽃, 혹은 알몸을 태우는 단풍 정도는 되어야 사랑을 그만 둘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온 몸을 태우고 사랑을 꺾어버리는 자연을 보면서, 화자는 자신이 갖고 있는 무딘 사랑의 붓대를 한탄한다.
그러고 보니 내 삶이나 문학 또한 절필도 못하게 생긴 처지는 마찬가지다. 이런, 쯧쯧!
김동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