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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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의 갈등

2010-12-0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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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 칼럼

한 일본인 이민1세 노인과 대화를 했다. 흥분을 하며 자신의 아들이 ‘바나나’라며 근면한 1세를 본받지 못하고 세월이 갈수록 2세와 3세들은 겉은 황인종으로 노랗지만 속은 백인처럼 하얀 바나나처럼 되어버려 느리고 게으르다는 것이다.

요즘은 스스로를 바나나라 칭하는 자녀를 둔 성인 이민 2세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다. 이들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여 교육적 성취가 높고 성실함이나 열심히 사는 면에서는 별반 1세와 다른 것이 없다.

그러나 확실하게 다른 점은 2세 부모들은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녀들이 학교에서 놀림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공감한다는 것과 강압적이리만치 높은 교육적 기대감으로 압박하던 자신들의 부모와는 달리 자녀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대화한다는 것이다.


요즘 다문화에 관련된 자료를 읽으며 아시안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아직도 중국인 중심이지만 한인사회의 성장과 함께 한인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한인1세 부모들은 유교적 사고를 중요시하고 유교적 가치관을 자녀에게 전승하려고 한다는 사실과 미국에 오래 산 부모일수록 자녀의 교육비 부담을 대신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는 연구결과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1.5세와 2세 자녀들은 부모들의 헌신적인 뒷받침과 경제적 도움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에 부응하고자 교육에 몰두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으며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언어의 장벽으로 인한 대화의 단절을 들고 있다.

데이빗 리스먼은 “군중속의 고독”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사람들을 세 가지 집단으로 구분된다고 했다. 한 집단은 전통과 과거를 행위의 모델로 삼는 전통지향적인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가족에 의해 학습된 도덕과 가치관을 행위의 모델로 삼는 내부지향형인 사람이며, 세 번째는 동료나 이웃 등 또래집단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영향을 받아 행동을 하는 외부지향형의 사람이다.

외부지향형의 경우 소속된 집단으로부터 소외받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살며 그로인해 늘 불안하고 고독함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한인학생들은 부모의 기대감 때문만이 아니라 숫적으로 우위인 백인학생들 속에서 소외를 당하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공부를 통해 그들에게 인정받고 더 나아가 우위를 점하고자 부단히 노력을 한다.

그러나 높은 학업성취는 타인종 학생들로부터 오히려 빈축을 사기도 하고 모델이민자로서 획일화된 미국사회의 기대와 기준에 부응하는 삶을 강요당하며 그 기대에 부응하는 정도에 의해 자신의 가치가 정해진다는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

이민 1세 부모들은 2세 자녀가 학교에서 겪는 마음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부모는 높은 학업성취만이 자녀들이 이민생활의 역경을 헤치고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것이라고 믿고 자녀에게는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하고 뒷바라지를 위한 힘든 일은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민가정의 2세 자녀들은 심한 심리적 고통을 안고 있다. 가정에서는 언어의 장벽으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고 학교에서는 늘 소수민족으로 놀림과 수모 속에 짓눌림과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이다.

장애가 있는 아동의 경우는 소수민족으로 도외시 당해야 하는 것 외에 같은 한인이라 하더라도 장애 때문에 비장애 한인학생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이중의 어려움을 갖게 되고, 학습장애와 같이 경도장애 아동은 강압적인 부모의 교육열 때문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자녀의 올바른 성장과 미국사회에서의 성공을 위해서는 높은 학업성취만을 자녀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먼저 부모가 그들이 미국사회에서 소수민족으로 겪는 부담감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방법 중의 하나이지만 자녀들이 타고난 재능을 찾아 최대한 계발시키는 방법도 중요하다. 재능이 어떤 분야이던 그 분야에서 타인종 사람들과 함께 협력하며 지도자적 역량을 발휘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김효선
<칼스테이트 LA특수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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