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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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만들기

2010-11-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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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명절의 하나인 추수감사절이 목요일로 다가왔다. AAA에 의하면 이번 추수감사절에 4,220만명의 미국인들이 집에서 50마일 이상 여행해 그 수가 작년보다 11.4% 증가할 것이라 예측한다. AAA 관계자는 이번 장거리 여행객 중 94%는 자동차를, 4%는 항공을 이용할 것으로 내다보며 “개인소득과 가계소득의 상승 영향으로 추수감사절 연휴 호텔, 항공기, 렌터카 예약률이 지난해에 비해 10%정도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고 한다.

미주한인들은 미국에 온 햇수만큼의 추수감사절을 보냈을 것이다. 누구든지 이민 초창기에는 미국사람들이 들떠서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는 것처럼 자신들도 그렇게 보내고 싶어 한다. “1620년 뉴잉글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신세계를 건설한 청교도들이 신대륙 특유의 대형 식용조인 터키를 먹었지, 식민지 시대 초기에 사과나 배가 없었으니 과일 대신 먹던 야채가 호박이라지” 하며 추수감사절의 유래에도 관심을 갖고 미국인들의 풍습을 따르면서 빨리 미국생활에 적응을 하려 한다.

어떻게 하면 맛있게 터키가 구워질까 연구 하면서 몇 십분 간격으로 흘러나온 육즙을 덧발라가며 터키를 굽고 서툰 솜씨로나마 그레비, 크렌베리 소스와 호박파이를 만들고 와인을 준비하여 한상 가득 차린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자리가 좀 잡히면 그동안 사귄 이웃이나 친구 집에 초청받아서 다른 사람이 해주는 터키구이와 각종 요리를 맛있게 먹으며 한갓지게 놀다 오기도 할 것이다. 원래 자기가 해먹는 밥보다 남이 해주는 밥을 편하게 받아먹으면 더욱 맛이 있는 법이다.


이렇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되면 “우리에겐 추석이 있지 않은가, 미국 추석인 댕스기빙에는 터키보다는 한국인 입맛에 맞는 닭이 낫지”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고 나중에는 꽤가 나기 시작한다. 남들이 놀러오라는 것도 부담스럽고 귀찮고 그저 조용히 집에서 푹 쉬고 싶어지는 것이다. 오븐에서 터키를 구운지는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 버리고 “그래도 댕스기빙에 터키가 빠지면 섭섭하지”하는 아이의 말에 터키는 보스턴 마켓에 주문하거나 집 앞 델리에서 사먹고 만다.

우리 집도 미국에 사는 기간이 오래 되면서 이런 패턴을 그대로 따라 가고 있다. 그런데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오하이오로 유학을 온 조카부부가 처음으로 뉴욕에 온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할 때 못가 본 조카가 인사를 온다니 어떻게 하면 뉴욕을 잘 구경시켜 줄까, 막내이모가 얼마나 근사하고 멋진 문화 도시에 사는 지 보여주고 싶어 마음이 바쁘다.(이것이 가난해도 뉴욕에 사는 자랑이고 긍지다)

유학생이라선지 블랙 프라이데이의 샤핑에는 관심이 없고 컬럼비아 대학교와 42가 공립도서관, 한인타운, 메트 뮤지엄을 보고 싶다고 한다. 함께 뉴욕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며칠 동안 놀고먹을 생각을 하니 덩달아 즐겁기 그지없다.

가을이 되면서 한국에 있는 옛 친구들에게서 오랜만에 이메일이 오고 있다. 대부분 아이들을 대학에 보냈거나 졸업 후 독립해 나가 집안이 호젓해지면서 외롭고 쓸쓸하니 옛 생각이 난다는 내용이다. 이미 이 나이에는 남편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 나 역시 학교 앞 허름한 식당에서 라면 한 그릇도 맛있게 먹으면서 아무 걱정도, 사심도 없이, 그저 배를 잡고 깔깔 웃어가며 수다를 떨던 20대 시절이 가끔 그립다.

살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그런 것들이라면 이번 추수감사절에도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를 해볼 참이다. 나이가 들어도 삶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싶다. 이번에 오랜만에 명절다운 추수감사절을 보낼 것 같다.


민병임 /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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