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2010-11-18 (목) 12:00:00
오늘을 산다 해도 어차피 갈 거라면
눈 감고 하루쯤은 주정꾼이 되었다가
이승도 저승도 아닌 그런 길로 들까보다.
등 굽은 나는 지금 어디쯤에 와있을까
그 좁은 골목길로 굴렁쇠를 굴리다가
발목이 자주 빠지는 늪 속에서 헤맸으니.
투정도 시가 되던 고향길로 접어들자
그 많은 외로움을 장죽으로 다스리며
비어서 정작 가득히 넘치시던 할머니.
사는 걸 산다는 걸 조금은 알았기에
헌신도 댓돌 위에 동그마니 올려 놓고
저만큼 남은 그 길을 맨발로나 걷는 거다.
이우종(1925 - 1999)
시인이 작고하기 1년 전에 발표한 시조다. 사람이 세상을 뜨기 직전에는 지나온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한다. 화자는 이승도 저승도 아닌 그 길을 주정꾼이 돼 걷기도 하고, 어린 아이로 돌아가 굴렁쇠를 굴리며 골목길을 가다 늪에도 빠지고, 고향길로 들어가 장죽을 두들기던 할머니의 외로움도 알게 된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는다는 이 시의 결미는 이승의 굴레를 벗어버린 후련함을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한편으로 시인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아 숙연해진다.
김동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