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독자 한 분이 한국 연속극을 보느냐고 묻는 이메일을 보냈다. 어쩌다 몇 편을 봤지만 계속 본 것은 없던 터라, 하나를 정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로 했다.
그랬는데, 문제가 생겼다. 안 그래도 일 때문에 바빠서 이 컬럼도 제 때 못 쓰는데, 그 연속극 때문에 더 바빠지게 된 것이다. 고백하건데, 중독자가 된 것이다. 새 DVD를 시작하면 밤이 늦도록 끝까지 보는 중증이다.
나를 망치는 그 연속극은 5-6년 전 방송되어 한국에선 잊혀져가는 ‘굳세어라 금순아’이다. 젊은 과부 금순이 직장, 가족, 사랑을 꾸려가는 얘기로, 지금 내 혼을 뺏고 있다.
일일 연속극은 영어로 ‘소프 오페라 (soap opera)’이다. 1950년대엔 일일연속극의 스폰서가 비누회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소프 오페라’ 하면 저질의 느낌을 주는데, ‘굳세어라 금순아’도 그 전형적 특징을 다 갖추고 있다. 로맨스와 질병으로 줄거리가 이어지고 비현실적이어서, 가난한 주인공들이 매일 최신 유행 옷을 갈아입고 완벽한 화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뭐가 그렇게 재미있을까?
시청자들은 그러려니 하면서 연속극을 봐야 한다. 오페라를 보면서 “누가 현실에서 서로 노래로 대화하느냐”며 푸치니나 베르디를 공격하는 사람은 없다. 오페라는 그저 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렇듯, 말도 안 되는 대화가 오가는 일일연속극도 나름대로 질 높게 만들 수가 있다.
‘굳세어라 금순아’가 바로 그렇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뛰어나다. 특히 두 여배우의 얼굴 연기가. 줄거리 보다 그들의 얼굴로 극이 구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엔 금순 역의 한혜진의 표정에 별 변화가 없어 황당할 정도인데, 회가 거듭될수록 연기의 은근함이 보여지다가 드라마의 2/3 쯤에서 기쁨에 넘쳐 갑작스레 활짝 웃는 그 표정의 행보는, 오페라의 클라이막스 준비과정, 폭발을 방불케 한다. 은근한 친근감이 느껴지는 시어머니 김자옥의 표정도, 못되게 화를 내다가 마음 녹이는 따뜻함을 보이기까지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이 드라마는 미국인들에게 더 재미있다. 한국문화 특히 가족 간의 역학관계를 잘 묘사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에겐 교과서와 같다. 게다가 소소한 재미도 꽉 차 있다. 할머니가 ‘지금’을 의미하는 ‘시방’ 같은 사투리도 가르쳐주고, 생활 습관 등 일반적 한국 분위기를 세세하게 잘 보여준다. 음료를 내갈 때 쟁반을 받치는 것, 과일 잘라 먹는 것, 술자리에서 연소자들은 몸을 옆으로 돌려 술을 마시는 것, 반말과 존댓말의 계속적 변화 등.
가장 재미있는 것은 드라마의 진전형태다. 미국 연속극은 대개 간통과 위법을 통해 진전되는데, 이 극은 거짓말에 의해 진전된다. 인물들이 일을 급하게 수습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결국엔 그 대가를 치른다. 거의 매 회가 거짓말 탄로의 긴장 속에 다음회로 연결된다. 간접적이고 계층구조적인 유교적 가치관의 어두운 면을 아주 잘 포착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극은 밝고 건전하다. 마치 한국 문화관광부가 만든 홍보자료 같다. 날카롭거나, 터무니없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드라마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미성년자 시청 불가도 아닌데 어째 그렇게 재미있단 말인가? 특히 충격적 드라마를 좋아하는 미국인에게 말이다.
1999년의 한국영화 ‘거짓말’ 을 보자. 30대 남자와 고등학생 소녀 간의 변태성욕적 관계를 포르노 수준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는 충격 그 자체였고 상당한 논쟁이 오갔다. 그랬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잘 만든 영화로 생각된다.
한데, 따지고 보면 ‘굳세어라 금순아’가 그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고 논쟁의 여지가 많다. 한국의 오랜 결혼관습을 정면에서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낙관적인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그 방법은 진부하여 시청자의 흥미를 끌도록 드라마화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데도, 이 극은 훌륭한 연기로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한다.
‘굳세어라 금순아’을 다 마치려면 아직 7시간 더 남았다. 빨리 칼럼을 마치고나서 DVD를 플레이어에 넣어야 겠다.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