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손’
2010-11-04 (목) 12:00:00
두 손을 펴든 채 가을볕을 받습니다
하늘빛이 내려와 우물처럼 고입니다
빈손에 어리는 어룽이 눈물보다 밝습니다
비워 둔 항아리에 소리들이 모입니다
눈발 같은 이야기가 정갈하게 씻깁니다
거둘 것 없는 마음이 억새꽃을 흩습니다
풀 향기 같은 성좌가 머리 위에 얹힙니다
죄다 용서하고 용서 받고 싶습니다
가을 손 조용히 여미면 떠날 날도 보입니다
이상범(1935 - )
매 행이 ‘--니다’로 끝납니다. 가을에는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던 곡식들도 고개를 숙이고 말투도 공손해지나 봅니다. 발자국도 가만가만 내딛고, 하늘빛조차도 허투로 흘려버리지 않도록 두 손을 모읍니다.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고 눈물자국만 어룽대는 빈 손을 들여다봅니다. 이제 떠날 날도 머지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용서받을 일도, 용서할 일도 남기지 않고 싶습니다.
김동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