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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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2010-10-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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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치는 참으로 오묘하다. 생겨나는 것이 있으면 사라지는 것이 있고 자라는 것이 있으면 또 시드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순수 자연에 의존해 이루어지는 경우와 자연의 순리를 거스리고 인간의 지혜를 빌려 강제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두 부류의 근본적인 차이는 기다람이 차이일 것이다. 자연은 때가 차야만 그 결실을 내뱄지만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시긴에 그 결실을 내뱄기 위해 노력한다.교육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잉태되는 순간 부터 40주를 말없이 기다려 한다.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40주 이다. 이 기다림을 거스리는 경우 산모도 아기도 큰 어려움에 봉착한다. 물론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 20주 30주 만에 태어난 아이도 살려낸고 한다. 하지만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40주를 채우게 해주는 일 뿐인 거 같다. 결국 자연의 교육 방식은 기다림을 요구한다. 우리에 교육 방식은 다분히 그 기다림을 거부하는 쪽으로만 흘러가는 듯하다. 물론 불필요한 기다림에 발목잡혀 있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무리한 강제는 결국 온실에서 강제로 키워낸 야채와 다를바가 없다.

과학기술이 제공한 여러가지 특혜로 사시사철 만과만채를 즐기게 되었음을 환호하던 우리는 금세 식상해져 자연의 산물을 비싼 돈을 주고 사고, 마트에도 온통 organic 제품이 가득하며, 슬로쿡 방식의 요리법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결국 자연의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교육에도 여러가디 새로운 교육법들이 제시되고 또 금방 내 아이를 천재나 수재로 만들어 줄 듯한 광고들을 접하고 한다. 그러다 조금 시간이 흐르면 조용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빠르고 쉽게 목표를 이루려는 우리의 마음과 그 것을 이용하는 상업적 가치와 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착각하는 사회적 요구애서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이 시점에서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세계적으로 열성적이라 소문난 우리 교육 열기는 과연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필자가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교육은 시대를 넘어 존경받는 인간을 키워내는 일이라 생각된다. 부모는 누구나 자식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길 바라며 그 힘든 뒤바라지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어떤 부모도 자식이 비난 받는 성공인(?)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너무 순진한 것일까?

요즘 한국 공직 사회는 모법이 되지 못하는 부모상에 강한 질타가 가해지고 있다. 효의 극치는 자식이 성공하여 그 부모의 이름을 높혀주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요즘은 누가 먼저 부모의 이름을 더럽히는 지 경쟁하는 듯 싶다. 이것이 결코 자녀의 잘못만이 아니라 그 부모의 잘못이 더욱 크다는 생각입니다. 기다림을 배우지 못한 그들이 빠르고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사회는 아이들에게 그렇개 많은 것들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스스로 그럴 것이라고 믿고 무리하며 강요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세상에 최고는 없다, 최고라고 믿는 많은 것들은 순간순간 무너져 내리고 새로운 최고가 지속적으로 생겨날 뿐이다. 모든 방면에 최고를 만들기 위해 동문서주하기 보다는 선택된 몇가지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났다고 생각된다. 그런 가운데 배움의 깊이를 느끼고 진정 크고 탄탄한 결실은 기다림이 요구된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기다림는 겸손을 가르치고 겸손은 덕을 키워주며 이
것이 곧 존경받는 존재로 가는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역사를 통해 항상 시대는 많은 것을 요구했고 끝없는 경쟁은 존재해 왔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 여건을 도외시 하고 시대를 넘어 존경받는 이들도 꾸준히 생겨났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자연의 산물처럼 변하지 않는 그 가치를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김찬수 Esoterica Math& Science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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