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고와 최악의 인터뷰’

2010-10-08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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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야구경기를 취재하러 나간 적이 있다. 양쪽 팀에 한국인 선수가 하나씩 있어 어떻게 두 선수와 모두 인터뷰할 시간을 만들지 고민이었다. 한 선수는 경기 전에 만나고, 다른 선수는 경기 후에 만나면 좋겠건만 경기 전에 선수들과 접촉하는 것은 보통 감독이 싫어한다.

얼마 전 미국 배구대표팀을 만나러 갔을 때에도 정신 집중이 흐트러진다는 이유로 연습 또는 경기 전에는 절대로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 대신 경기 후에는 얼마든지 시간을 줄 수 있다며 감독이 직접 선수들을 데리고 나와 인터뷰 자리를 만들어준 적도 있다. 여하튼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하필이면 연장 16회까지 간 이번 시즌 두 번째로 긴 경기가 벌어져 장장 5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고민 끝에 한쪽 팀 라커룸 앞에 가서 한 15분쯤 기다리니 그 구단의 미디어 담당자가 문을 열고 나와 밖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프로 구단과 선수들에게 인터뷰란 사실 팬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덕분에 돈을 버는 것에 대한 ‘임무’다.


5시간짜리 경기 후에는 다른 한국 기자도 없었다. 나중에 보니 경기 전에 인터뷰를 하고 간 한국기자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 그룹에 끼어서 인터뷰를 했다면 그의 6타수 무안타를 보면서 조금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선수는 이때 인터뷰할 기분이 아니었다. 6타수 무안타로 그 긴 경기에서 졌으면 짜증날 만도 했지만 기분 좋을 때만 하는 인터뷰는 누구나 다 한다. 15년 이상 어린 선수의 말투와 태도에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기다린 5시간이 아까웠다.

그만 철수하려다 다른 라커룸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이미 옷을 갈아입고 떠났을 수도 있겠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뒤늦게 상대팀 라커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서 있던 미디어 담당자에게 “너무 늦지 않았냐. 지금 들어가도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인터뷰를 위한 시간인데 물론”이라며 “경기 후 1시간까지 괜찮다. 얼른 들어가 보라”고 했다.

이 선수는 며칠 째 벤치만 지킨 아쉬움이 크겠건만 기꺼이 인터뷰에 응했다. 그리고 아주 솔직하고 친절하고 순수했다. 이 선수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 나빴던 기분이 다 풀렸다. 나오면서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과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을 비교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떠올랐다.

그 이후 그 동안 인터뷰한 선수들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됐다. 물론 기분 좋은 인터뷰가 있었고, 기분 나쁜 인터뷰도 있었다. 최고 인터뷰는 누구였고, 최악의 인터뷰는 누구였는지 리스트를 만들어 봐도 재미있는 기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최악 리스트’는 밝혀봤자 항의만 들어올 게 뻔하다. 이런 데는 워낙 민감해서 선수의 아내가 나서 따지고 장인어른까지 쫓아온 경우도 있다. 그냥 그 1위는 미국무대에서는 뛰지 않은 야구선수라고만 해두겠다.

사실 인터뷰가 즐거웠던 한국 스포츠스타는 금방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사회 환원을 할 줄 아는 최경주와 양용은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과 긴 직접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고, 주로 여자 골퍼들과 팀 스포츠 선수들을 많이 만나 보았는데 그 중에서는 박세리에 대한 기억이 좋은 편이다. 무뚝뚝해 보이는 면이 있지만 직선적이고 꾸밈이 없다.

가장 친절한 인터뷰는 스포츠 스타가 아닌 리처드 리오단 전 LA 시장이었고,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편파판정으로 금메달을 도둑맞았던 전 세계 챔피언 복서 로이 존스 주니어도 짙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에 대한 한이 맺혔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만나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쁜 사람은 어느 나라에도 있고, 나쁜 일은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며 전혀 한국을 탓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밖에는 1998년 US여자오픈 연장전에서 박세리에 패한 선수로 유명한 태국출신 골퍼 제니 슈시리폰, 한때 LPGA투어에서 아니카 소렌스탐, 박세리와 ‘빅3’를 이루던 카리 웹, 구스 히딩크 축구 감독 등이 ‘좋은 인터뷰’로 떠오른다.


이규태 스포츠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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