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샤넬 No. 5

2010-10-07 (목) 12:00:00
크게 작게
방학동 숲속에서 몰래 향수를 만들던 친구가
녹지대 불법건축물 단속으로 추방당하고,
친구의 비데오 제작사업을 인수받았으나
불량음반 단속법에 걸려 실패하고,
어렵사리 나훈아의 쇼오 공연을 따내었으나
전에 미지급한 출연료가 있어 취소당하고,
종로에 양품가게를 내었으나
시멘트 배합 부실이 드러나 야반도주하고

그는 그 길로 방학동 숲 속의 옛 창고로 달려가서
숨겨놓은 샤넬 No. 5 두 상자를 들고 내게 와서
쓸만한 것이니 사달라고 애원했다

그런데 몇 년 만에 우연히 만난 그 친구는
그새 신학공부를 마치고 목사가 되어 있다
나는 그가 샤넬 No. 5를 만들던 숙련된 솜씨로
제5복음서를 만들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의 교회는 개봉동에 있었다.



도한호(1940 - )


제대로 된 모든 일의 시작은 자기반성이다. 자기 자신을 흠 없는 신의 반열에 올려놓고 남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자기비판에 인색한 문인, 언론인, 정치가, 종교지도자들은 목사이면서 신학자인 도 시인의 이 시를 한번쯤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No. 5 복음서를 만들고 있지나 않은지, 내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시다.


김동찬 <시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