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
2010-10-05 (화) 12:00:00
한, 꼬리만 붙잡고
나 혼자 남았다.
斷指하듯 제 꼬리를 뚝,
자르고. 너도 독종이구나 야쿠자 도마뱀
힘께나 써 보이는 도마뱀
은근히 유혹하다가
꼬리를 빼는 처녀처럼
너도 교활하구나 색시집의
닳고 닳은 도마뱀.
속옷 같은 얇은 피부로 도망간 도마뱀
바람이 거칠고 추워졌다
네 살도 거칠고 식어갔느냐
체온을 나눠주려 했는데
그것도 너에게 폭력이었느냐
천지에 도마뱀 아닌 것이 있느냐
유성식(1966 - )
유 시인의 ‘명왕성’ 연작시를 통해서 낯선 별의 이미지를 보아온 때문일까. 화자가 인류의 유일한 생존자일 것만 같다. 생명체를 발견하고 체온을 나눠주려 하는데, 도마뱀은 폭력을 당한 경험으로 인해 꼬리만 남기고 도망간다. 천지에 냉혈동물 아닌 것은 살아남기 힘든, 차갑고 황량한 얼음별……그곳에서 도마뱀의 꼬리를 들고 서 있는 화자의 쓸쓸한 모습과 오늘을 살고 있는 내가 겹쳐진다. 슬픈 영화다.
김동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