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게 군 생활은 무채색의 시절로 기억되고 있다. 유신이 막바지로 치닫던 때 신검에서 시력 때문에 3급 판정을 받았음에도 대학생은 되도록 현역으로 입대시키라는 당국의 방침에 따라 논산훈련소로 보내졌다.
새로운 권력이 등장한 격변기까지 이어진 군 생활은 때를 잘못 만나 청춘을 썩혔다는 억울함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는 식의 특별함도 없던 담담한 시간이었다. 다만 다른 정치 상황이었으면 보충역에 편입됐을 극히 나쁜 시력으로도 별 애로 없이 군 생활을 하면서, 면제자의 다수가 사실은 병역을 수행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사람들이 아닐까 짐작해 보곤 했다.
김황식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다. 김 후보자를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는 여러 의혹들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병역이다. 형님 병원에서 뗀 진단서로 병역연기를 받고 두 눈의 시력 차이가 크다는 이유로 결국 면제를 받은데 대해 의혹의 눈초리가 쏠리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병역은 국민정서상 대단히 민감한 문제이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발목을 잡았던 것도 두 아들의 병역면제였다. 만약 이 후보의 두 아들이 군대만 갔더라면 1997년 대선은 하나마나한 게임이 될 뻔 했다.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에 이어 병역면제자가 총리후보로 지명되자 “병역면제 정권이냐”는 볼 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번 정권 들어 유난히 군대에 가지 않은 공직자들이 많이 중용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보면서 “만약 이들이 남들처럼 꼬박 3년 군대 갔다 왔다면 지금의 출세가 가능했을까”라는 불온한 상상을 해 보게 된다.
대통령은 기업입사를 통해 샐러리맨의 신화를 만들었고 이런 신화를 정치적인 성공으로 이어간 인물이다. 또 당대표와 총리후보자는 사법시험 합격으로 입신의 토대를 다졌다. 병역을 피해간 이들의 이력이 탈법적인 기피는 아닐지 몰라도 청춘의 소중한 3년을 떼어 내야 하는 군 생활을 건너뜀으로써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었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많은 젊은이들이 병역의 의무를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저하는 것은 현역 복무로 인해 치러야 할 ‘기회비용’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기회비용은 여러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했을 때 그 선택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다른 가치를 뜻하는 경제용어다. 군대 가는 젊은이들에게는 학업과 취업 등이 그것이다. 그러니 일시적인 인기와 경기력을 먹고 사는 연예인들과 스포츠 선수들에게는 군 생활로 인해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더 부담되고 그래서 강한 기피 유혹을 받는 것이다.
18개월과 24개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군 복무기간이 21개월로 잠정 결정됐다.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다 절충점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병역 의무는 신성한 일이고 복무기간은 계속 단축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군대 가는 일은 여전히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20대의 2~3년은 인생의 진로와 관련해서 가장 결정적일 수 있는 시기인데다 군대에 가는 사람과 가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는 현실에서 군 생활은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래서 병역기피의 유혹은 쉽게 근절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꺾일 줄 모르는 원정출산 열풍 역시 아들이 태어날 경우 자기 아이에게만큼은 병역의 굴레를 지워주지 않겠다는 부모들의 이기적인 기피플랜인 경우가 많다.
기회비용을 대폭 줄여주지 않는 한 현재의 병역제도는 잠재적인 기피자들을 계속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차제에 병역과 관련해 전향적인 방안을 검토해 볼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모병제로의 점차적인 전환이 그것이다. 아직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다는 상황론과 국민정서를 이유로 한 모병제 반대가 거세지만 모병이 군 전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발상에는 문제가 있다.
기계적인 형평에 따라 징집돼 단기간 복무하고 제대하는 현재의 병역제도보다는 자발적으로 입대한 사병들을 전문성을 지닌 장기복무 전력으로 길러내는 모병제가 전투력을 더 높여줄 수도 있다. 어차피 저 출산 추세로 볼 때 현재의 군 규모를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다.
한국사회를 내부적으로 좀먹고 있는 병역을 둘러싼 소모적 공방과 갈등을 불식시켜 줄 수 있음은 물론이다. 박탈감과 상실감이 발붙일 수 없는 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은 공정사회 구현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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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