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이 한국의 아이들보다 순진하고 착하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같은 연령대라면 한국의 아이들이 훨씬 영악하고 현실적이라는 뜻일 것이다. “유치원생들도 아파트 평수에 따라 친구를 가리고 아버지 차가 중형인지 소형인지 다 안다”라는 식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그 말이 정확히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되바라진 아이들은 여기도 얼마든지 있다)하지만 펌프 업 기사를 위해 학생들을 만날 때 마다 꼭 드는 생각이 있다. “과연 이 학생이 한국에서 자랐더라도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을까?”라는 것이다.
기자가 만난 학생들은 대부분 공부를 잘 하는 것은 물론, 운동과 예술에 대한 취미 활동을 공
부만큼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보다 봉사에 대한 개념이 어린 시절부터 확립되어 있었다. 공부를
잘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한국에서 이런 아이들을 뉴욕에서처럼 자주 만날 수 있었
을까?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레잇넥 사우스 하이스쿨 9학년인 송승연(크리스틴 송)양을
만났을 때도 같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전형적인 미국식 엄친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뷰 초반부터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중학교 졸업식장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승연양
이 “절대 상 받은 내용만은 신문에 내지 말아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하는 것이다. “공부
잘하고 상 받는 학생이 저 뿐만은 아니쟎아요. 그런거 자랑하면 정말 창피하고 쑥스러워요.”
워낙 부탁이 간절해서 “기사 끝에 살짝 한 줄만 언급하는 것”으로 타협(?)을 했지만 그 내용
을 주로 해서 기사를 작성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면
서 기사작성에 대한 부담감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송승연이라는 학생을 소개할 때 상이라는 부분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뉴욕에서 온 후 유치원부터 이곳에서 자란 승연양은 공부를 아주 잘하면서도 공부에 대한 중압감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밝고 건강한 소녀였다.
운동은 만능에 속해 교내 거의 모든 클럽에서 활동했고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를 연주한다. 9년차 베테랑 걸스카웃 단원으로 지역 봉사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것은 물론 리더십과 우정이라는 것에 믿음도 확고하다. 교회(프라미스 교회)에서 접한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의 실상에 충격을 받아 UN 직원으로 ‘세계평화’를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기도 하다. “빈곤한 국가의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사역활동 영상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부모님 잘 만나 얼마나 편안한 환경 속에서 자라왔는지 알았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오히려 더 잘사는 집 아이들로부터 상대적인 빈곤감까지 느끼기도 했던 게 부끄러워요.”
자랑하고 나서는 걸 싫어하는 승연양은 어린 시절 원치도 않게 대대적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있다. 아버지 송형진씨가 근무하던 현대증권 사무실이 무역센터빌딩에 있었던 것.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송씨는 기적적으로 빌딩을 빠져나온 후 아내와 딸과 함께 신문과 방송에 크게 나왔었다. 송씨는 지금 런던에 근무 중이어서 가족과는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다. 승연양은 “외국에서 혼자 돈 벌고 있는 아빠 생각하면 더 착하고 훌륭한 딸이 되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긴다”며 “아빠를 보기 위해 영국도 갈 기회가 있어서 좋은 점도 있다”고 말했다.승연양에게 한 약속대로 대통령상에 대해서 마지막에 간단히 언급하면; 이상은 전 과목에 A를 받아야 하고 주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며 추천서를 받아야 한다. 이상의 조건을 채운 학생 중에 교장이 마지막에 선발한다. 절대 아무나 받는 상이 아니다. <박원영 기자>